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 영화를, 고상함 따위 1도 없이 세상을, 적당히 삐딱하게 바라보는
거의없다(백재욱) 지음 / 왼쪽주머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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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문어체로 정중하고 독자를 배려하는 조심스러운 책만 읽다가 이렇게 툭 던지는 욕섞인 구어체 책을 대하니 당혹스럽다.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다. 돌려 얘기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통쾌함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동네 오빠/형이 '자 여기 앉아봐. 들어봐' 식의 얘기다. 농담같은 이야기 같다가도 어느 순간 철학적이기도 하고, 정치적이기도 하고, 로맨틱하기도 하며 자유자재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 흥미롭다.

책의 구성은 영화 제목과 상연 연도만을 걸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관련 책이라면 흔히 있는 '영화의 한 장면'이나 인상 깊은 '포스터' 한 장도 이 책에는 없다. 저자가 책속에서 지속적으로 말하듯, '궁금하면 찾아 보면 될 일이다'. 저자는 열 살부터 30년이 넘도록 영화를 보아왔고, 배우는 물론, 감독과 작가, 촬영 감독의 기술까지 꿰고 있어 보인다. 또, 호오가 분명해서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 올린 댓글과 시비를 가리고, 시종일관 시니컬하다.

무엇보다 저자의 영화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다. 이를 테면, 그냥 부르스 윌리스의 재미있는 영화로 알고 있는 <다이하드>가 미국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영화라고 한다. 전형적인 미국남자, 카우 보이 중에서도 터프가이인 블루컬러가 일본 회사 건물에서, 독일 악당을 때려 잡고, 인질로 잡힌 자기 아내를 되찾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미국의 모습을 잘 읽었으며,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한다고 설명한다. 즉, 일본의 전자 제품이 미국을 점령하다시피 한 시기에, 일본이 보고 베낀 독일을 물리치고 미국 여자를 구하는 미국 국뽕의 영화라는 의미다. 미국 남자들의 기를 살려주는 이야기다. 영화의 줄거리만 따라가지 말고 그 안에 있는 '상징'들을 읽어내야 영화가 한 단계 높은 의미를 갖는다. 줄거리와 재미가 끝이었던 이 영화를 다시 보게 한다.

영화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도 많다. 정권의 권력을 상업영화에 행사하였던 과거 정권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영화는 그 시대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여야하지, 권력자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고.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영화들을 이미 거의 다 보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잔인한 살해장면이 넘쳐나는 슬래셔 무비에 <에이리언>을 포함시킨 것은 장르의 특성을 조금 비틀었을 뿐 스페이스에서 살육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카리오: 암살의 도시>가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지 몰랐다. 시대 배경에 미국과 멕시코의 마약카르텔과의 관계에 대한 갈등과, CIA, FBI, 복수에 칼을 가는 한 남자로 구성된 팀이 행하는 폭력이 목적만 정당하면 수단이 어찌 되었든 상관없냐는 철학적 질문에 이르게 된다. 난 도대체 뭘 본거지? 이 영화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읽고 있는데 자꾸 옆에서 '그만 좀 웃어' 라고 구박을 한다. 만화보다 재미있는 책이다. 영화 속 상징과 은유를 혼자 이해하기 어려운, 또 세상을 삐딱하게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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