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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밤 - 인생은 왜 동화처럼 될 수 없을까? 문득 든 기묘하고 우아한 어떤 생각들
김한승 지음, 김지현 그림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4월
평점 :
톡톡 튀는 저자 소개가 흥미롭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학교 다니기를 싫어해놓고 정작 지금은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학장으로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말이 재미있다. 저자는 미학을 전공했고, 철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삽화자는 저자의 딸인데 '밝은 달이 뜨는 밤에는 월광욕을 즐기며 자는데, 얼굴이 타지 않아서 좋다'고 자기 소개를 하는데 살짝 미소가 지어진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 정글 위 무지개, 2부 정글을 지나가는 달, 3부 정글에 찾아온 밤이다. '정글'은 '철학적 분석으로 다듬어지지 못한 채 제멋대로 자란 상상이 뒤엉킨 곳(p12)'을 의미한다. 철학적으로 잘 정리가 된 것은 도시가 되고, 도시 주위에는 정글들이 있는데 저자는 정글과 도시를 오가며 도시화를 진행시킨다. 사실 각 부의 제목과 내용의 상관관계는 모르겠다. 저자만 아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게다.
이 책은 결말을 열어놓은 우화같은 이야기 모음이다. 비유와 상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처음에 이게 무슨 의미인지에 신경을 쓰다가, 하나 둘 이야기를 읽다보면 조금씩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묘한 글이다. 세상 어디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라 낯설지만 고개 끄덕여진다.
여러 이야기 중에는 반전의 이야기도 있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믿고 집을 나온 아이들이 다리 밑에 모인다. 그러면, 그 곳에 오래 있었던 아이가 이들을 설득시켜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나, 정작 다리밑에 오래 있었던 아이는 자기의 논리대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형벌로 돌을 꼭대기까지 올리고, 올려진 돌이 아래로 구르면 하루 일과가 끝나는 죄수들은 이것이 잔인한 형벌이라고 생각하며 중간에 그 돌에 깔려 죽기도 하고, 처참하게 산다. 그러나, 끝까지 오래 살다 죽게된 죄수는 이 부질없는 벌을 즐겼다며 평화롭게 눈을 감는다.
블랙코미디같은 이야기도 있다. 지하철에서 만능보험을 파는 남자는 사람들에게 불행해지면 수혜를 받는 보험을 판다. 그러나, 사실, 그 자신이 지하철에서 보험을 팔게 되면 불행할 것이라는 걱정에 보험을 든 사람이었고, 아무도 사지 않는 보험을 어떻게 하면 들게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방부제 미녀'라 불리는 유명한 연예인은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기 위해 늙지 않으려고 인생의 반을 거꾸로 매달려 팽팽한 젊은 얼굴을 유지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 오싹함을 느끼며 피한다.
미래 사회의 모습 같은 이야기도 있다. '무지의 베일'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 자신의 업무가 바뀐다. 낙엽 쓰는 일을 하던 이가 대통령 일을 한다든가 말이다. 그러자 사회의 갑질이 없어지고, 뇌물거래도 사라진다. 그러나 무엇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에게 과연 이 제도가 공평한지는 의문이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부모님전상서'라는 인공지능스피커를 구매한 아들의 이야기는 마치 영화 'Her'를 떠올리게 한다. 아들의 입맛에 부모 역할하는 AI를 조금씩 수정해 나가며 같이 사는 아들의 생활이 어떨까 의문이다.
독특한 스토리텔링이 철학적 질문과 함께 이어져 있어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주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