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기록
마르티나 도이힐러 지음, 김우영 옮김 / 서울셀렉션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50년전 한국의 모습은 어떠할까?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이지만, 이 책의 사진을 보면 지금은 거의 없는 모습들이다. 그 만큼 한국의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근대화라는 이름 하에 낡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겼던 과거가 있었다.

저자인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는 스위스 출생인데,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동아시아 언어문명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중에 필요한 중국서적을 먼저 대출해간 한국 남자와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을 하였지만, 짧은 결혼생활 후 남편과 사별한다. 남편을 잃고, 32살인 1967년에 처음 한국을 방문한다. 연구와 시댁방문을 위해서다. 그로부터 1969년까지, 그리고, 1973년에서 1975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서울대 규장각에서 연구를 하며 한국의 여러지역을 탐방하며 틈틈이 찍은 사진을 책으로 냈다.

이 책은 전시회장에서 파는 도록과 같은 느낌이다. A4용지를 반으로 잘라 세로보다 가로로 긴 책인데, 많은 사진과 그 사진에 얽힌 설명이 한글과 영문으로 함께 수록되어 있다.

여행자처럼 한국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 아니라, 역사가로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눈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그 당시 양반가의 집 구조와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 지금은 보기 힘든 안택고사, 옥산서원의 모습, 향교의 대성전에서 공자와 제자 그리고 한국의 유학자 18명을 기리는 제사 의식, 갓을 쓰고 상복을 입은 남자들이 상을 치루는 모습, 동제, 이문동의 무당이 저자의 과거를 맞히고 작두를 타는 긴장감 넘치는 설명들이 사진과 더불어 생생하다.

특히 음력 11월 15일에 행한 안택고사는 우리의 전통을 잘 보여준다. 안택고사는 집안에 사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사인데 설명이 부족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안택굿은 전문 사제인 무당이 주관하는 단순한 종교의례를 뛰어넘어 한 해의 농사를 갈무리하는 시기에 평소 집안을 보살펴주는 가신에 대한 종합적인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던 일련의 미신타파운동과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이미 대부분 중단되었거나 소멸되어가는 추세에 있다'고 한다. 이 고사는 다른 의식들과는 다르게 남성이 아닌 주부와 모셔온 무당이 주가 된다. 집안 곳곳의 신에게 음식을 바치고, 무당이 주문을 하고, 액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한 후 늦은 밤에 식이 끝나면 음식을 나눠 먹고 잠이 든다. 남자들은 다음날 정오에 귀가한다.

불과 50년 전의 사진인데도 낯설다. 시골에서 살았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처음 보는 사진들이 꽤 된다.

격세지감을 느낀 부분이 몇 군데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 중인 <일성록>은 1973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2011년 세계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 눈으로 볼 수 있는데 저자는 그 당시 복사기가 없어 맨손으로 만지며 필사를 했다고 한다. 또한, 경주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이라 왕릉 아래에 빨래를 널은 모습도 희한하다.

흥미로운 책이다. 외국인의 눈에 뿐만 아니라, 5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가 봐도 과거의 한국의 모습이 신기하다. 우리의 전통이 중단되지 않고 간단한 형태라도 보존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도 크다. 50년 전 한국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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