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에서는 자기 목숨이나 친한 친구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한 문제와 관련 없는 그 모든 것들이 가치를 잃었다는 얘기를 이미 했을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다른 모든 가치가 희생됐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가치를 위협하고, 또 그것을 의혹 속으로 내던져 버린 정신적 혼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 지닌 가치가 더 이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세계, 인간의 의지를 박탈하고, 그를 단지 처형(처음에 그를 이용할 대로 이용해 먹다가 육체의 마지막 한 점까지 이용하도록 계획된) 대상으로 전락시킨 세계, 이런 세계에서 개인의 자아는 끝내 그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만약 강제 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킬 마지막 노력으로 이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으면, 그는 자기가 하나의 인간이라는 생각, 마음을 지니고 내적인 자유와 인격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라는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거대한 군중의 한 부분에 불과한 존재로 생각한다. 존재가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이나 의지가 없는 양 떼처럼 무리 지어 ─ 때로는 여기에 있다가 그다음에는 저기로, 때로는 함께 몰려다니다가 때로는 서로 떨어져 다니는 ─ 다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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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일종의 소극적인 행복(쇼펜하우어가 ‘시련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했던)이었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상대적인 행복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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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싱이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것이다. 심지어 나와 같은 정신과 의사들도 비정상적인 상황, 예를 들자면 정신 병원에 수용된 상태라거나 평소보다 비교적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는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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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옙스키의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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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잔혹한 폭력을 일삼고 도둑질하는 건 물론, 심지어 친구까지 팔아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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