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 질문하는 힘만이 성장으로 이끈다
스테판 반 호이동크 지음, 이가을 옮김 / 데이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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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위대한 과학자나 기업가, 시인과 작가 같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멋진 생각을 많이 떠올리고, 주변을 놀래키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솔직히 말하면 내가 동경하는 모습은 그런 모습이다. 책을 읽으려는 마음속에는 그런 욕망도 분명히 있었다. 다만 이 책은 단순하게 그 답을 제시해 주진 않는다.

책이 알려주는 것은 삶을 자동으로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태도다.


첫 장에서 호기심의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현상 유지에 도전하며

2. 발견, 탐험, 학습을 이끄는 것

나는 이 정의를 읽고 호기심을 의식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산다는 것은 머리를 써서 생각하는 것이다. 애써 움직이는 것이다. 책에서는 호기심의 반대를 수용이라고 말한다. 수용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것에 가깝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흘러가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무의식적인 것을 최대한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태도가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묻는 것, 왜 이런 상황을 피하는지 살피는 것, 삶에서 어떤 것이 반복되는지 보는 것.

나의 삶에서 자주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다. 불편한 상황에 오래 노출될 때도 그렇다. 감정적으로 많이 흔들릴 때도 그렇다. 그럴 때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머리를 쓰고 싶지 않다. 왜 힘든지 살피기보다 그냥 정신을 빼앗기고 싶어진다.

가장 쉽게 빠지는 것이 유튜브 쇼츠 같은 즉각적인 자극이다.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이 주는 자극에 나를 맡긴다. 수동적으로 정신을 빼앗긴다. 스마트폰을 쥐고 계속 스크롤하는 행위는 휴식 없는 잠 같다. 깨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쉬는 것도 아니다. 몸은 쉬는 것 같지만 정신은 계속 피로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피로감과 자괴감뿐이다. 삶의 주인이 스스로가 아닌 느낌도 든다. 적어도 그것이 원하는 삶의 방향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 몇 달 동안 중요하게 지키려고 한 태도들이 있었다. 의식적으로 살자. 마음을 열자. 행동에 성의를 담자. 나는 이 세 문장을 내 추구미로 삼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성대로 살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관성대로 살면 내가 원하는 인간관계도 만들기 어렵다. 물적인 성취도 영적인 성취도 흐려질 것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려면 먼저 나를 의식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야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


호기심도 관성을 가진다. 이 말은 내가 최근에 붙잡고 있던 의식적으로 살자는 태도와 연결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소설책을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배경은 어떤 곳일까? 이게 정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일까? 한번 찾아볼까? 이런 식의 호기심을 깨워 놓으면 그 태도는 다른 분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금융이나 의학을 볼 때도 같은 호기심의 태도가 따라붙을 수 있다.

의식적으로 살게 되면 그 관성이 삶 속에 남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호기심을 가진다는 것은 내가 동경하던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조금씩 닮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대단한 인사이트를 가진 사람들도 결국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 질문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일지 모른다.

호기심을 가지려면 먼저 스스로에게 그것을 허락해야 한다. 이 부분은 내가 생각해 온 마음을 열자라는 태도와 연결되었다. 문을 닫아 놓으면 새롭고 좋은 것이 다가와도 받아들일 수 없다. 마음을 닫고 있으면 세계도 타인도 나 자신도 새롭게 보이지 않는다. 결국 호기심은 바깥의 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 일이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같은 역할에 너무 오래 머무르다 보면 더 이상 이기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저 지지 않기 위해 버티며 과거에 매달릴 뿐이다.

출처 입력

이 문장은 내가 두려워하는 미래와 닿아 있었다. 이것은 수용이고, 잠들어 있는 것이고, 무의식적인 삶이다. 난 앞으로 안정적이고 수직적인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나는 한 조직 안에서 수십 년을 보내게 될 수도 있다. 안정적인 직장은 나쁘지 않다. 수용도 인지적 자원을 줄여주는 고마운 작동 방식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맞았던 행동이 현재에는 틀릴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과거의 자동적인 방식을 고수하면 계속 실패할 수 있다.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순응보다 호기심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계속 깨어 있어야 한다. 직장 환경 상 더 순응적인 태도로 살기 쉽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물론 모든 순간에 호기심을 가질 수는 없다. 모든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인지적인 자원도 마찬가지이다. 호기심은 자원을 많이 쓰는 태도다. 앞서 말했듯 그래서 수용이 필요하다. 매번 모든 것을 의심하고 새롭게 판단하며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언제 수용하고 언제 호기심을 가져야 할까. 책은 여기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수용이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새롭고 낯선 것이 두려워서 밀려난 것이라면 그것을 의식해야 한다. 삶을 되돌아보면 너무 건조하게 흘러가고 정체되어 있을 때는 대체로 도전이나 목표가 없을 때였다. 새로움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때야말로 수용에서 호기심으로 나아가야 할 때일 수 있다.


책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얼마나 새로운가?

  2. 이 새로움을 다룰 도구가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따라 우리의 태도가 결정된다. 너무 낯설기만 하면 사람은 호기심을 갖기 어렵다. 반대로 너무 익숙하면 굳이 탐구하지 않는다. 적당히 새로워야 한다. 그리고 그 새로움을 다룰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순응이 아니라 호기심을 선택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욕망한다면, 인생에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는다면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면 된다. 새로움을 적당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고 그것을 다룰 도구를 마련하면 된다. 내가 내린 나름의 답은 AI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냥 GPT와 계속 대화하면 된다. 처음부터 너무 깊이 들어가려고 하면 안되고 막힌 부분을 계속 물어야 한다. 어느 정도 선까지는 친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말도 안 되는 질문도 던져야 한다.

이 주제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줘.

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게 설명해줘.

내가 어디서부터 공부해야 할지 알려줘.

이런 식으로 계속 질문하다 보면 처음에는 낯설던 것도 조금씩 다룰 수 있는 것이 된다. 그 다음부터는 블로그나 유튜브 콘텐츠를 봐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지식을 쌓아 올릴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불편함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수용은 편안하다. 편안함이 계속되면 호기심은 약해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영성가 오쇼 라즈니쉬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기분이 나빠야 생각을 시작한다는 말이다.

불쾌함은 단순히 나쁜 감정만은 아니다. 그것은 문제를 발견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본능은 그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호기심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내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을 무조건 피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알려주는 신호인지 살펴봐야 한다.

또 호기심 어린 태도에는 겸손함이 전제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호기심의 출발점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인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발견하지 못한다. 결국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호기심의 세 가지 차원은 세계와 타인과 자신이다. 내가 해야 할 행동은 세계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타인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내가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외부 상황을 보고 잠재적인 결과를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그 안에서 선택할 수 있다.

저자는 행동하지 않는 호기심은 호기심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말에 동의한다. 생각은 결국 검증되어야 한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각은 쉽게 망상으로 머문다. 머릿속에서만 그럴듯한 생각은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호기심은 질문에서 시작하지만 행동을 통해 확인되어야 한다.


호기심을 위해서는 시간도 의식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그냥 흘려보내면 호기심은 자라지 않는다. 이렇게 책을 읽고 후기를 쓰는 일도 결국 호기심 근육을 키우는 일이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내 삶과 연결해 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훈련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내일부터 갑자기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 하루가 망가지는 순간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가 언제 생각하기를 포기하는지. 언제 수동적인 자극에 정신을 넘겨주는지. 언제 새로움을 두려워해서 익숙한 방식으로 도망가는지. 그런 장면들을 더 의식적으로 보려고 한다. 이 책은 의식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다양한 근거와 예시로 전달해 준다.

다만 서두에 언급했듯 책을 읽은 내 마음속에는 현실적인 욕망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 기대에서 보면 이 책의 내용은 조금 얕게 느껴지기도 했다. 구체적인 방법을 기대한 나에게는 태도와 관점을 말하는 부분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책의 한계라기보다 내 기대가 과했던 것일 수도 있다. 책 한 권이 갑자기 나를 인사이트 머신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책이 줄 수 있는 것은 그런 완성된 능력이 아니라 태도의 변화일 것이다.


호기심
호기심
스테판 반 호이동크 2026 데이원

<출판사 서평단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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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팡파르 - 현대의 돈과 광고
니시노 아키히로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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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꿈과 돈' 을 인상깊에 보았기 때문에 이 책에도 관심이 갔다.

'꿈과 돈'과 비교하면 조금 더 비즈니스 적인 부분에 무게가 실린 책이다.

저자는 사업에 필요한 돈의 조달을 대부분 크라우드 펀딩으로 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인사이트가 굉장하고 생각한다. 


한 끗 다른 새로운 시각에서 이러한 과정들을 조명할 수 있는 책이다.

직접 읽어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니시노 아키히로가 쓴 비즈니스 사례서다. 

저자는 개그맨이다. 동시에 그림책 작가이자 공연 기획자다. 

본문에서는 그가 직접 실행한 프로젝트를 설명한다.


주요 내용은 ‘굴뚝마을의 푸펠’ 제작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크라우드 펀딩을 중심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이 책은 그 경험을 분석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다. 

전통적 방식과는 다르다. 은행도 없다. 투자자도 없다. 

사람들의 ‘신용’을 기반으로 돈이 움직인다. 저자는 이 구조를 설계하고 실행했다.



핵심 개념은 ‘돈이 아닌 신용’이다. 저자는 돈을 신용의 수치화로 본다. 

신용이 있다면 호감이 낮아도 자금 확보가 가능하다. 

신용을 얻으려면 의사 표현이 명확해야 한다. 

그를 위해 필요한 건 환경이다. 

솔직한 표현이 가능한 구조를 만든다.

‘분위기 맞추기’는 금지다. 이는 신용을 깎는다. 

그는 자신의 본심을 드러낸다. 

말의 진위를 명확히 한다. 

그렇게 얻은 신용을 통해 그는 대규모 펀딩에 성공한다.



책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의 운영 전략도 제시한다. 

안티의 필요성. 무료 공개의 방식. 뉴스거리를 만드는 시점. 기념품의 개념. 등등



그는 말한다. 콘텐츠는 무료여도 좋다. 중요한 건 그 콘텐츠를 본 사람이 다시 참여하는 구조다. 참여는 신용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신용은 다시 돈으로 환산된다.

논리는 단순하다. 신용을 쌓고 자금을 얻는다. 

자금을 얻고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실행한 프로젝트는 다시 신용을 만든다.


자금이 없는 개인 창작자

팬 커뮤니티를 활용하고자 하는 기획자

새로운 방식의 마케팅을 고민하는 사업자

기존 구조에 의문을 가진 경영인


이라면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서평을 마무리한다.




-출판사 서평단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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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객관적인 자료들을 선별적으로 선택해서 이용할 수만 있을 뿐, 현실에 대한 해석은 항상 주관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세금과 복지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세금의 인상과 인하 중 더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한 주장을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어떤 주장이 더 윤리적인지를 가려내는 것도 어렵다. 더 선한 주장, 더 악한 주장이란 없다. 일부의 극단적인 사람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익과 사익을 합리적으로 조율해서 하나의 입장을 지지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누가 더 객관적인 자료를 많이 갖고 있는지에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 사람이 선하거나 악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현실의 상황에 대한 해석 차이가 개인의 입장 차이를 드러낼 뿐이다.
 

-알라딘 eBook <시민의 교양 - 지금, 여기, 보통 사람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채사장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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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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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 내면이나 정신
psyche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특성을 나는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말은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 혹은 그 어떤 사람을 지향하거나 그쪽으로 주의를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성취해야 할 의미일 수도 있고, 혹은 그가 대면해야 할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아실현은 자아 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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