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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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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에서 문학의 교황으로 불릴 만큼 인지도 높고 권위 있는 평론가이다. 독일인의 98퍼센트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설문 결과나, '문학 4중주'라는 텔레비전 서평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책에 대해 논하고 그로부터 독일 베스트셀러 순위를 뒤흔들어 놓기 일쑤였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그를 뒷받침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오래 전에 냈던 책 『내가 읽은 책과 그림』을 국내에서 제목을 바꾸어 재출간했다고 한다. 바로 『작가의 얼굴』이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 신간평가단으로 받은 책은 둘 다 서평이다. 그것도 저자의 직업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는 책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으로 가는 문』은 동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가 하면 이번  『작가의 얼굴』은 작가들과, 또 특히 그들의 초상화에 주목한 책이다. 초상화라, 사실 좋아하는 소설 같은 걸 읽어도 작가의 사진이나 초상화 같은 건 어지간해서는 눈여겨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 외국 작가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솔직히 구분도 잘 안 가는데 그런 초상화를 잔뜩 모아놨다니. 신선한 발상이다.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까진 좋았는데, 읽기 전에 책 소개를 보고 아차, 했다. 내가 독일 문학에 조예가 깊기는 커녕 아는게 많지 않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평론한 작가들 운데 내가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고작해야 절반 남짓이었고, 작품까지 읽어본 작가는 그보다도 적었다. 


그래서 아예 가볍게 읽어내리기로 했다. 어차피 유명한 작가들, 내가 아는 작가들만 모아놓는다고 책이 무조건 재밌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 반대라고 재미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이 책은 기대 이상의 수확을 내게 안겨주었다. 


글들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딱딱하지도 형식적이지도 않다. 문학의 대중성, 대중화를 위해 (어떻게 보면 통속적일 수 있는) TV 프로그램에 몸담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답게도, 초상화를 비롯해 참 다양한 내용이 책 속에 들어가 있다. 그냥 책이나 작가에 대해서만이 아닌, 그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사회적인 풍습,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 특정 시대의 모습 등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것이다. 그의 글은 가볍고 명쾌하다. 한편으로는 신변잡기적인 면모도 있어 다소 두서가 없을 때도 있지만 그런 진솔하고 유쾌한 면까지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장점이자, 그가 다른 평론가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까닭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나도 가볍게 읽다 보니 작가에 대한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정보보다는 개성 넘치는 초상화에 더 주목하고, 저자 마르셀이 그 작가의 무엇을 보고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 방법에 대한 서술을 주의깊게 읽게 되었다. 이 책과, 내가 쓰는 이 글은 속된 말로 하자면 격이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저자나 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는)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런데 나는 참, 리뷰 한 글자 한 글자를 쓰면서 표현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쓰게 되는데ㅡ책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도 에둘러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ㅡ 이 책의 저자는 작가의 좋은 점은 콕 집어서 칭찬하는 반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깔끔하고 신랄하게 비평해내는 점이 놀라웠다. 무릇 진정한 평론가라면 그래야 마땅하다고 하지만, 남이 삶을 쥐어짜며 공들여 만든 작품을 깎아내리는 일은 내게는 아직까지도 참 어려운데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독일 뿐 아니라 유럽에서 유명한 몇 작가들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 때문에 몇몇 작가들과 좋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니 그의 명성과 인기에도 그늘이란 존재했던 법인가 보다. 

리뷰를 쓰고 나서 저자에 대해 다시 찾아봤을 때야 그가 얼마 전 별세했음을 깨달았다. 삶과 인류를 성찰하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도 위대하지만 그런 작가를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시선으로 읽고 짚어내는 비평가들 또한 작가에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친근한 이웃과 같던(비록 나에게는 아니지만) 문학의 교황이 곁을 떠났다는 것은 아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책을 번역하신 분의 말씀처럼 한국에서 그와 비슷한 재치있고 명쾌하며 자기 주장 뚜렷한 평론가를 만나 한 수, 아니 몇 수 배우고 싶은 마음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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