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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 학살과 파괴, 새로운 질서 ㅣ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2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평점 :
이 책의 저자인 A.J.P. 테일러는 사실 1961년에 출간된 전작인 '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 대전의 기원'으로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영국의 역사가입니다. 전작에서 방대한 자료와 분석으로 2차 대전에 대해서 분석하고 설명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악마와 같은 미치광이 개인으로서 히틀러에게 2차 세계 대전의 모든 책임과 원인으로 돌리는 것에 반대하고 당시 독일인들에게 전쟁 발발의 주된 원인을 묻자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유화정책만 시도했던 영국과 프랑스 정치인들이나 자국 내에서 권력과 이득을 취하려 했던 폴란드·체코·오스트리아 정치인들 또 신생 공산주의 국가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싶었던 소련의 입장 등을 부가적으로 참혹한 전쟁의 원인으로 들고 있습니다.
1974년에 출간된 이 책도 전작에 이어서 히틀러를 세계파멸로 이끈 '역사의 기획자'에서 그저 권력을 좇았던 '역사 속 한 인물'로 내려놓고,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에는 보다 많은 정치외교적 움직임이 얽혀 있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책은 복잡하게 꼬인 당시 외교와 정치사의 숨은 행간을 찾아 그동안 히틀러의 뒤에 숨어 면죄부를 받던 이들을 역사라는 무대 위로 다시 끌어올립니다.
결론적으로 2차 세계대전은 세계적 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참전해 전승국이 됨으로써 이후의 세계가 이 두 나라를 중심으로 재편됐습니다. 테일러는 이 책에서 프랑스의 패배 이후 영국은 어떤 전략을 구상해 실행했는지 또 독일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전쟁을 수행했는지를 꼼꼼하게 살핍니다. 이러한 저자의 분석을 읽어 나가면서 한나 아렌트의 저서가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겠습니다. 아렌트와 이 책의 저자간의 교감이 있었는지는 제가 알 수 없지만,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세계 2차 대전의 전범으로 수많은 학살에 가담했던 아돌프 아히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히틀러에게도 어느 정도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의 저자도 아렌트처럼 당시의 독일에 주목하여 독일인들이 그를 권좌에 올려놓았다고 하면서 히틀러는 독일 민족의 공명판으로 봅니다. 그럼에도 전후 히틀러를 악마로서 묘사하고 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움으로써, 나머지 독일인들은 무죄를 주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을 히틀러가 꾸며낸 음모의 실현으로 간단히 치환해 버렸던 당시 주류 역사가들을, 히틀러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면 책임을 나눠야 할 모두가 만족스럽기 때문 아니냐며 작심하여 비판합니다.
역사에서 역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나라와 세계의 운명을 가르는 전쟁이겠죠. 특히 2차 세계대전은 서구에서 엄청나게 발전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이전에 볼 수 없던 대량 살상이 자행된 전쟁으로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패망으로 인한 독립 등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책은 근래 나온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최고의 책으로 보여 집니다. 한 마디로 2차 세계대전의 흐름과 세세한 정황을 넘어 그 기원과 배경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좋은 학습서이자 연구서라고 생각됩니다. 저자의 2차 대전에 대한 원인 분석에 수긍하지 못하더라도 이 책에 나오는 2차 세계대전의 각종 전투의 전략이나 전술 그리고 전투 상황 자체의 분석은 물론 사진과 지도 및 도판 등을 비롯한 각종 자료만으로도 충분한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고, 다른 책들을 읽을 때에도 훌륭한 가이드가 될 듯합니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197151)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