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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평점 :
책 제목이 도시를 걷는 여자들인 것처럼 이 책은 '걷기'와 '여성'을 연결해 여성이 어떻게 도시 환경에서 배제돼 왔는지, 그런데도 도시는 여성들에게 어떤 자유와 기쁨을 안겨주는지, 여성이 도시를 걷기 시작할 때 걷기라는 행위의 의미가 어떻게 뒤바뀌는지를 탐구하는 책입니다.
사실 100여 년 전 우리 사회만 봐도 교조적인 성리학적 이념에 갇혀서 특히 양반네들 집 중심으로 여성들은 가급적 외출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부득이하게 외출할 때는 쓰개치마를 뒤집어쓰고 남자들을 피해서 다녀야하는 웃지 못 할 괴이한 풍습이 있었죠. 지금도 IS와 같은 극단적인 종교집단에서 여성들은 몸에 살을 절대 드러낸 채 외출하면 안 되고 외출 자체가 극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여성들이 밤길을 혼자 아무런 위험도 없이 나다닐 수 있는 사회를 선진사회의 척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을 보면 성평등의 선진국이라고 할 프랑스조차도 근대까지도 남성 없이 혼자 걷는 여성은 '거리의 여자'라는 환멸을 견뎌야 했다고 합니다. 도시를 관찰하는 산보자를 뜻하는 프랑스어 '플라뇌르(Flaneur·산책자)'가 남성명사인 것처럼 정숙한 여성은 거리를 산책할 수 없다는 편견이 언어에 숨어 있죠. 거리를 걷는 남성은 세상의 진리를 사유하는 철학자였지만, 길 위를 홀로 서성이는 여성은 몸을 팔기 위해 눈웃음을 짓는 창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책의 원제목은 '플라뇌즈(Flaneuse)'로 성차별적인 남성명사 플라뇌르를 여성명사로 전복한 신조어로 이 책에는 도시를 거닐면서 동시에 자신의 시선으로 재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과감한 여성인 조르주 상드는 남장한 채 돌아다니고 수많은 애인을 거느린 것으로 유명한데, 프랑스 대혁명이 여성을 변절자로 몰고 1832년 6월 파리 민중봉기가 실패로 끝나자 파리를 떠나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마을 노앙으로 돌아가 소설 '발랑틴'을 씁니다.
이 외에도 헤밍웨이의 전 부인으로만 알려진 마사 겔혼의 '여성 종군기자'로서 도전이나 소피 칼에게서는 '추적'이라는 남성적 행위가 여성의 것이 됐을 때 어떤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지 그리고 아녜스 바르다에게서는 카메라와 영화라는 매체 뒤에 여성이 설 때 시선의 의미가 어떻게 전복되는지 등 뉴욕, 파리, 런던, 베네치아를 누빈 수많은 ‘도시를 걷는 여자들’을 보여 줍니다. 요즘도 성차별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겠지요. 그러한 차별과 편견을 견뎌내고 예술과 문학 등에 새로운 지평을 창출해 낸 여성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