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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평점 :
정말 대단한 책이 번역 출간된 듯합니다. ‘왜 나는 젊어서 산에 끌려 산에 대한 열정으로 죽을 각오까지 했을까?’라는 개인적인 질문에 답을 찾고자 시작되었다는 이 책은 우리가 매일 그것과 함께 사고하고, 그것에 의해 만들어지는 지형인 언더랜드를 심도있게 탐험하고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언더랜드는 영어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지만 소위 액면 그대로 ‘땅(land) 아래(under)’라는 뜻으로, 저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발밑의 세상’이라고 표현합니다. 또 이 책의 부제는 ‘심원의 시간 여행(a deep time journey)’으로 심원의 시간(deep time)에 대해 저자는 인간의 능력으로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지질학적 시간이라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보관·생산·처리 공간이라는 세 가지 기능을 중심으로 언더랜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신을 땅에 묻고,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흔적을 남기는 등 기억과 물질을 언더랜드에 보관했고, 바위를 뚫고 유용한 광물을 캐내며 바다 밑에서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고 있죠. 또 인간 스스로 불러온 재앙을 막기 위해 지하 깊숙한 곳곳에 핵폐기물 처리시설을 설치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직접 고분, 광산, 숲, 도시, 바다, 빙하, 동굴 등 언더랜드 현장을 찾아 경험하고 관련된 역사를 찾아 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에선 ‘보이지 않는 도시’인 지하묘지 카타콤에서 18~19세기 광범위한 지하 채석장 공동에 수백만 구의 유골이 옮겨진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탈리아 북부 카루소에선 고대 그리스·로마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망자의 강’의 지질학적 배경이 된 ‘별이 뜨지 않는 강’을 탐사하고, 슬로베니아에서는 2차 세계대전 중 자행된 포이베 대학살 현장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언더랜드에 대한 탐사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우리가 사는 지표면 깊숙이 위치해서 우리가 직접 볼 수 없지만, 우리를 지탱하는 근원으로 보관, 생산, 처리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온 언더랜드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바이러스와 각종 자연재해가 창궐하는 세기말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가 되돌아 볼 과거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드문 책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