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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시
한산 지음, 신흥식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6월
평점 :
이 책을 처음 열어 봤을 때 340여 페이지의 책으로 하드 카버의 고급스러운 표지에 모두 374수의 한시와 이에 대한 번역 및 해설이 실려 있습니다. 한산시는 당나라 때 한산을 비롯하여 한산의 친구 습득과 한산처럼 은둔생활을 하던 풍간의 작품이 실려 있는 시집입니다. 이렇게 세 명의 은자들이 쓴 시들을 모은 시집이라고 해서 삼은시집(三隱詩集)으로도 불립니다. 여기서 한산이 지은 시는 314수이고 습득의 시는 57수이며 풍간의 시는 2수로 모두 373수가 전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사실 한산은 실제 이름이 아니라고 합니다. 한산이란 이름은 그가 절강성에 있는 천태산 국청사 부근 한암에 숨어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즉 한산시의 한산은 전설적인 인물로 본명은 알 수 없고 한산자 또는 한산 성인으로도 불립니다.
한산 다음으로 작품이 많은 습득은 국청사의 부엌에서 일하던 사람으로 끼니때마다 한산에게 밥을 지어 먹이고 시간만 나면 한암의 동굴 속에 들어가 한산과 함께 시를 지었다고 전합니다. 이들의 작품을 한산시라는 책으로 만든 사람은 여구윤으로 한산과 습득·풍간의 행적을 조사한 후 숲속의 바위와 마을 인가의 벽에 적혀 있는 시들을 모아 엮었습니다. 이 시집이 출간된 후 중국 소주성 밖에 한산을 기념하여 세운 한산사라는 절이 세워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대개 선을 탐구하는 내용이며, 때로는 전통적인 운율을 무시하기도 하나 뛰어난 문학성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가에서 많이 읽혀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로 스님 들 중심으로 많이 읽혀졌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성철 스님은 평소 딸 불필에게도 '한산시'를 읽으라 권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산이 숲속의 석벽이나 마을 인가의 마른 벽에 적은 300여 수의 시와 습득의 시 약간을 얻어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었는데 그기 '한산시'야. 한번 읽어봐. 두 사람은 바보처럼 살면서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를 당했지만 누구보다 쾌활하고 자유자재한 도인이었는기라.”하고 한산의 선시를 즐겨 암송했다고 전하죠. 그런 연유로 한번쯤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이번에 새로 번역해서 출간되어서 하나하나 읽어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유명하면서도 제 마음에 드는 시 한 수를 적어보면,
한산시 세 번째 시인 일명 ‘可笑’라는 시입니다.
우습다 한산 길이여!
수레나 말의 자취가 없네
시내는 몇 굽인지 기억하기 어렵고
첩첩의 산봉우리 몇 겹인지 모르네
풀잎마다 이슬 맺히고
바람이 한결같은 양상으로 소나무를 울리네
여기 길 잃고 헤매고 있나니
몸이 그림자에게, 어디로 가야할지를 묻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