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3 -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
찰스 만 지음, 최희숙 옮김 / 황소자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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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후 전 세계가 이전과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책입니다그래서 책 제목도 보통 신대륙을 발견의 기원으로 삼는 콜럼버스가 스페인 항구를 떠난 1492년이 아니라 이듬해인 1493년을 잡고 있습니다저자는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오늘날 바하마 제도에 도착한 사건을 농업혁명에 절대적 영향을 준 감자와 산업혁명에 결정적 역할을 한 고무나무를 신대륙에서 도입하게 하는 '세계화'의 단초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반대급부격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안겼는데 먼저 유럽인들이 몰고온 유라시아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그리고 기생충은 아메리카 대륙을 휩쓸며 4분의 3이 넘는 원주민의 목숨을 빼앗았다고 합니다이렇게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수가 줄면서 북미 서부에서 개척을 위해 지르던 방화의 불길이 잦아들었고이에 따라 불에 취약한 오크와 히코리 종이 불을 좋아하는 테다소나무왕솔나무소나무 같은 종을 밀어냈습니다.

 

인디언의 수가 줄면서 인디언의 사냥으로 개체수가 조절됐던 동물들도 번성하기 시작해서북미 전역은 질식할 듯한 잡목으로 뒤덮였고 이는 이산화탄소를 감축시켜 오늘날 기후변화와는 반대로 온실가스가 급감하면서 소빙하기에 가까운 기후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이전보다 훨씬 추워진 미 북서부 지역은 추위를 이겨낼 준비가 되지 않은 가축과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는데이 때 개체수를 늘린 것이 말라리아 모기였다는 것이죠.

 

거대한 담배 농장들이 있던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지역이 말라리아로 초토화되면서 노동자들을 구하기 어려워졌고 농장주들은 아프리카에서 일꾼을 사오는 방식으로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였는데이것이 바로 악명 높은 미국의 노예시장의 기원이라고 합니다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운반해오는 노예선에는 아프리카산 수수와 수박 그리고 아프리카쌀은 물론 황열병까지도 함께 싣고 왔다고 합니다.

 

이 책은 이렇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까지 순환적으로 일으키는 연쇄작용을 하나하나 추적해 갑니다이처럼 이 책에는 현대에도 그렇지만 500여 년 전에도 세계화는 축복과 재앙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이 책의 부제인 ‘1493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에서 호모제노센(Homogenocene)이라는 말은 균질화 및 동질화를 의미합니다즉 세계화를 통해서 이질적이던 구대륙과 신대륙의 생태계가 균질화 및 동질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호모제노센의 세상은 쌍방향입니다저자는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건너간 감자와 고구마가 각각 아일랜드와 중국 명나라를 어떻게 변모시켰는지아마존강 유역에서 자라던 히비어 브라질리엔시스(고무나무)가 영국으로 밀수돼 140년 뒤 라오스와 중국 국경 인근을 어떻게 황폐화시키는지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이렇듯 이 책에서 400년 전 세계화가 태동할 무렵부터 당시 사회가 맞닥뜨린 첨예한 이슈들은 오늘날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는 모습이 놀라울 정도 입니다살충제의 발명에 맞서’ 바이러스가 염기서열 하나를 변형시켜 스스로 진화해 인류를 위협했던 것은 코로나19의 공포에 시달리는 지금 상황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이 책을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방대한 역사적 내용을 생생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당시 시간에 쫓겨 주마간산 식으로 읽었는데이번에 기회에 천천히 완독해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다시 읽으면서 당시에는 놓쳤던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고 또 저자가 던지는 화두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오랜 시간이 지나서 읽어도 전혀 오래된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코로나19에 의해 공황에 빠진 현 시국에 더 와닿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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