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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과 신호 - 당신은 어느 흔적에 머물러 사라지는가?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19년 9월
평점 :
예전에 저자의 태교 49개월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태교의 기간을 10개월이 아니라 임신 전 3개월부터 생후 3년 간의 49개월로 보고 있어서 조금 놀라웠습니다. 아직 임신여부를 알 수 없는 임신 전 기간까지 태교에 포함시키는 것에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 저자는 그 기간 동안 일관되고 지속적인 양육을 해야 진실한 생명의 질서를 가진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고 논리적으로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심리분석가로서의 연구와 교육 상담 작품 활동 등을 통해 열 두 권의 책을 결과물로 세상 밖에 내놓은 저술가이기도 한 저자는 오랫동안 상담을 하면서 인간은 유아기 때 받은 억압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태교가 잘 되어야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고, 그래야 인류의 미래가 있다는 사명감으로 태교상담가를 육성하면서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도 역시 저자의 독특한 사상이 담겨있는 책입니다. 세계 사상을 선사시대에서부터 현재의 이르기까지 거대한 사유의 체계로 3단계로 나누어서 크게 3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부 상상의 질서에서는 우리가 많이 들어본 고대 서양 철학자들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을 내릴 때,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삶을 지향해야한다고 했는데, 중용의 삶은 덕들 통해 행복한 삶을 이뤄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중용’은 극단 혹은 충돌하는 모든 결정에서 중간의 도를 택하는 유교교리를 설파했던,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유명한 책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양과 동양으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기본적인 초기 고대 철학의 이론들은 상당히 유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세계에는 지금처럼 분화된 학문이 아닌 소위 통합적인 학문과 사고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양은 기독교라는 신앙에 의한 독재로 동양은 전제왕권이라는 독재 세계로 사상과 정치의 암흑시기가 오게 됩니다.
2부는 상징의 질서로 소위 중세의 종교 암흑을 깨뜨리고 근대 시민사회의 기반을 만들었던 종교개혁으로 시작하고 과학의 발달로 이어지는 양상을 살펴봅니다. 3부 현상의 무질서에서는 고도로 발전한 과학기술의 한계와 인류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길 바라는 작가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에는 39명의 물리학자, 철학자, 정신분석가 등이 등장하고, 각각의 장은 ‘흔적’, ‘신호’, ‘정보’ 로 나뉘어 기술되어 있습니다. ‘흔적’은 작가의 문학적인 독백 형식으로 기술이 되고, ‘신호’는 그 시대의 철학자나, 물리학자의 고민을 철학적 사유 체계로 펼쳐 보입니다. 마지막 ‘정보’ 에서는 보편적 의미를 정보적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제가 철학적인 지식이 많이 부족해서 저자의 사상을 쉽게 따라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서양 사상을 관통하는 독서를 통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