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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 - 미중일 3국의 패권전쟁 70년 ㅣ 메디치 WEA 총서 7
리처드 맥그레거 지음, 송예슬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에게 미리 알려드려야 할 사실이 이 책의 제목이 ‘미중일 3국의 패권전쟁 70년’인 만큼 한국의 비중이 작다는 점입니다. 물론 한국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내용이 아니라 상당히 피동적으로 환경적인 요소로 주로 언급됩니다. 즉 북한 핵 문제와 남북한의 군사 분쟁,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일 간의 역사 갈등이 일부 언급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반도가 미중일 3국의 종속변수 정도로 다루어집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중국과 일본 간의 관계 변화와 우리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인 역사문제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냉전 상태였던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에서 닉슨과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하며 갑작스럽게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오랜 시간 서로를 냉랭하게 대했던 중국과 일본도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게 되었는데, 지금과 달리 처음에는 오히려 일본이 적극적으로 과거사를 사과하려 했으나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했던 중국은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고 일본의 경제적 원조를 끌어내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세월이 흘러 중국의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일본을 추월할 조짐을 보이면서 관계가 역전이 되어 이후 중국은 기회가 될 때마다 난징대학살을 비롯한 전쟁 피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으나 일본은 태도를 바꿔 과거사를 지우고 자신들이 전쟁의 피해자로 비춰지도록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일본 총리나 대신들이 ‘종전 기념일’을 전후해 전범들이 안치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거나 태평양전쟁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날조한 역사 교과서 문제가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것처럼 저자는 중국과 일본이 관계를 원만히 하려 노력할 때마다 결국 역사 문제가 늘 발목을 잡았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양국 관계의 핵심이라고 지적합니다.
사실 일본은 오늘날에는 이러한 태도를 고수하는 것을 넘어 강화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책임은 전부 부인하면서 반성이나 배상은커녕 오히려 문제 제기하는 국가들을 공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 한국과 위안부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언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 보여주면서 오늘날 한일 갈등의 원인과 기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연한 말이겠지만, 일본의 역사관 못지않게 미국이 중국과 일본을 대하는 방식과 입장의 변화가 동아시아 전체의 판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겠죠.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랜 시간 일본이라는 방어선을 내세워 동아시아를 팍스 아메리카나 질서 아래 두고 통제해왔으나 미국과 중국이 수교를 함으로써 이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은 오늘날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상황이 결코 갑자기 벌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배경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보여주고 일본이 도발한 경제전쟁의 근원을 알리고 있습니다. 작금의 적반하장의 일본의 경제전쟁 선포에 대해서 국제정치적인 이해를 원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