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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역사인가 - 린 헌트, 역사 읽기의 기술
린 헌트 지음, 박홍경 옮김 / 프롬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제목이 E. H. 카의 유명한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많이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원제는 ‘History’로 편집자 분이 ‘역사란 무엇인가’를 많이 염두에 두고 지은 제목이 아닐 까 생각이 듭니다. 사실 외국에서도 이 책이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21세기판이다!”라는 평가가 있다고 합니다. 과연 무엇이 그러한 평가를 받게 해주는 지 궁금해하며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이 독특한 점은 이 책이 시작하는 1장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역사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이유’라는 제목으로 저자는 근래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짐과 동시에 ‘무엇이 역사인가’란 질문에 대답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을 생생히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에 대한 진실 모색은 지속적인 발견 과정이라고 주장하며, 그것이 우리 사회에 왜 중요한지를 설명합니다.
요즘 일본의 과거 왜곡하기를 보면 저자의 주장이 쉽게 수긍이 갑니다. 아직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계시고 우리나라만이 아닌 중국 아시아 각국 그리고 심지어 서양 여성들의 생생한 경험들이 증언되었는데도 이를 모두 부인하고 증거를 파기하고 오히려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이는 일본을 보면 앞으로 수십 년 후에 일본이 기록할 역사가 두려워지게 됩니다.
이처럼 크게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진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이 책은 ‘역사에 대한 노골적인 거짓말’을 비롯해 역사적 진실을 둘러싼 최근의 쟁점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역사적 기념물의 보존과 파괴를 둘러싼 갈등과 앞에서 살펴 본 역사 교과서 논쟁 그리고 전 세계 다양한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등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적 진실을 규정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 역사적 진실을 밝혀낼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특히 ‘무엇이 역사인가’란 질문에 답하는 일, 즉 역사적 진실을 규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면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술에 대해서 논하는 내용이 와닿았습니다. 저자는 진실을 규정하는 작업 없이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자들의 거짓말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나아가 역사적 진실을 규정하는 일은 사실이 무엇이었는가라는 첫 번째 단계와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두 번째 단계의 작업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홀로코스트의 경우 600만 유대인이 고의적 계획에 따라 학살되었는지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희생자 수가 과장되었는지 여부 등 사실 여부의 확인은 간단해 보이지만 과거란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문서, 새로운 유물, 새로운 자료가 끊임없이 발견되며 기정사실을 뒤집을 수 있는 이러한 잠정적 성격에서 음모론이 싹트고 이를 이용하는 세력이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활용 가능한 최적의 증거’를 지속적으로 발견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로 일본을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요즘 여러 역사책을 읽으면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일본의 역사 왜곡 및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면서 역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현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래서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의 21세기판이라는 이 책을 통해서 역사를 되새겨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