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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동학농민혁명답사기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 2019년 8월
평점 :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조정석이 열연을 한 ‘녹두꽃’이라는 역사 드라마가 방송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 조정석이 나와서도 좋았지만 동학 농민혁명을 다룬 드라마라 더욱 흥미진진하게 보았습니다. 이 드라마 제목인 나오는 녹두꽃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라는 참요에 나오는 위 노래에서 일반적으로 파랑새는 창생(蒼生), 즉 백성을 비유하고, 녹두꽃은 전봉준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요라는 것이 상징적이고 원작자나 원작자의 의도가 명확히 전해지지 않고 어구도 조금씩 바뀌기도 해서 비슷한 게 많은 노래라 해석도 저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녹두꽃이 아닌 '파랑'이 '팔왕(八王)'을 의미하는 것으로 즉 전(全)의 파자로 전봉준을 의미하며 '새'는 민중 즉 동학농민군을 뜻한다는 설득력이 있는 주장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유명한 한 서린 참요만을 남기고 역사 속에 묻혀버린 동학농민혁명은 그동안 부르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이름도 여러 가지였습니다. 당시 조선이나 일본 정부 그리고 일부 유생 측의 입장은 ‘동학난’이라 하여 폭도로 규정하였고 이는 일제강점기까지 공식적인 표현이 될 수 밖에 없었죠. 당연하게도 해방 후는 일제와 봉건주의에 항거한 농민들의 혁명으로 ‘갑오농민전쟁’, ‘동학혁명’, 그리고 최근 주류적으로 일컫는 ‘갑오동학농민혁명’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동학농민혁명답사기’인 것처럼 이 책은 저자가 동학농민혁명의 전적지를 돌아보며 농민군이 탐관오리에 맞서고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자취를 찾아서 기록한 책입니다. 저자는 동학농민혁명 전적지 답사 여정에서 역사의 발자국이 뚜렷하게 찍힌 산들을 만나고, 그 산자락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과 ‘사람이 곧 한울’인 갑오년 농민군의 맑은 정신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길을 나섰다고 합니다.
물론 저자가 가장 먼저 찾아 가는 곳은 전봉준의 고향이자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라는 고부입니다. 고부 두승산 아래에서 19세기에 걸출한 인물들이 태어나고 살다 갔는데,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와 덕천면 신월리 손바래기 마을에서 태어나 증산교를 창시한 강일순이 바로 그들입니다. 저자는 이어 녹두장군과 나주목사의 담판을 지켜본 나주 금성산 그리고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의 산인 경주 구미산 등 17장에 걸쳐 동학농민혁명의 무대를 살펴봅니다.
여기에는 이 태어난 고창 당촌마을 뒷산, 전봉준의 태몽 설화를 간직한 소요산, 황토현 승전을 낳은 무장기포의 목격자인 고창 문수산, 영광에 무혈 입성한 동학농민군의 남진을 지켜본 영광의 진산, 녹두장군과 나주목사의 담판이 진행됐던 나주의 진산, 동학농민혁명의 처음과 마지막을 바라 본 완주 모악산, 호남좌도를 호령했던 혁명가 김개남의 산인 남원 교룡산, 동학농민군의 2차 기병을 바라본 완주 서방산, 동학농민군의 한양 진격을 물끄러미 응원했던 여산 천호산, 동학농민군의 죽음과 부활을 알리는 공주 주미산, 동학농민군의 섬진강 싸움을 바라본 지리산 형제봉 등으로 이어집니다.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인 저자는 1980년대 중반에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해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의 재조명을 위한 사업을 다양하게 펼쳐왔다고 합니다. 이번 책은 동학농민혁명의 전적지를 차례로 돌아보며 농민군이 탐관오리에 맞서고 외세에 맞서 민중과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자취를 기록했는데, 싸움의 승리를 기억하기 위한 전적지 답사서가 아닌, 싸움의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역사 기록서로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주요 장소가 사진으로 생생하게 소개되어 있고, 이 장소들에 얽힌 흥미로운 설화 등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최초로 아래로부터의 근대적 혁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일본군에 의해 제압당했지만 그 정신은 아직도 살아서 우리 후손들에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요즘 다시 동학농민혁명이 있었던 일본이 군국주의의 기치아래 과거의 과오를 뉘우치지 못하고 적반하장으로 구한말처럼 도발하는 이 시기에, 이 답사기를 따라 저도 한번 답사를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