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 세계 사랑으로 어둠을 밝힌 정치철학자의 삶,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도서 누구나 인간 시리즈 1
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김경연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세계 사랑으로 어둠을 밝힌 정치철학자의 삶’에서 볼 수 있듯이 한나 아렌트의 사상보다 그녀의 삶에 집중해서 보여주는 한나 아렌트의 ‘전기’라고 하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디트리히 본회퍼 전기’, ‘프란츠 카프카 전기’, ‘요제프 괴벨스 전기’, ‘헤르만 헤세 전기’ 등 문제적 인물을 날카롭게 들여다 본 전기로 각종 저술상을 수상한 독일의 대표적인 전기 작가라고 합니다.

 

세계대전 당시 독일지배하의 유럽의 유태인으로서 몇 번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고가며 격동의 세계를 관통해서 살아왔던 그녀의 삶을 소설처럼 풀어내기 때문에 혹시 한나 아렌트의 철학이 어려워 보이는 분들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한나 아렌트 삶의 핵심이라 할 그녀의 철학이 빠질 수는 없겠죠.

 

한나 아렌트는 마르틴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카를 야스퍼스,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 교류했고 스승이자 17년 연상의 유부남인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가 나치 정권에 가담하자 그와 결별하고 프랑스를 거쳐 죽을 고비를 넘겨서 미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자신이 도망쳐온 독일에서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에 대한 홀로코스트가 벌어졌다는 소식에 그녀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어떻게 괴테와 칸트의 나라 독일이 나치즘(Nazism)이라는 전체주의를 승인했을까?"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렇게 그녀는 전체주의 연구에 몰두하여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을 집필합니다.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해서 전체주의의 목적지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목표는 혁명적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 자체를 바꾸는 것으로, 잔인한 선동과 고문 그리고 학대들의 수단을 통해서 개인의 자발성과 자유를 박탈하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 반응만 하는 다루기 쉬운 존재로 바꾸려는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독일 국민은 왜 이런 전체주의를 받아들였을까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아렌트는 역사적으로 고찰하여 1차 대전 패전 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1919년)으로 엄청난 규모의 전쟁배상금을 포함해 무려 448개나 되는 벌칙을 받아들였는 데다가 1929년 대공황까지 겹쳐 경제는 파탄 났고 실직자는 넘쳐났으며 미래는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때 히틀러가 최고 인종인 독일 민족이 단결하면 불황 극복뿐 아니라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1차 대전의 패배를 유대인과 사회주의자들의 배신으로 규정합니다. 그러자 새로운 지도자를 열망하고 있던 독일인들은 순식간에 국가주의를 받아들이고 히틀러에 열광하게 됩니다. 즉 아렌트는 경제가 어려워 민중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달콤한 미래를 말하는 지도자가 나타나 그들을 선동하면 대중은 순식간에 폭민으로 변해 전체주의를 받아들인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즘 일본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안부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소녀들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히고 수많은 징용자들을 가혹한 노동으로 죽음에 몰아넣었던 일들조차도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인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부인하고 나아가 다 끝난 과거일로 치부하며 이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들이나 양심가들을 공격합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피해국의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피해국에 또 피해를 입히겠다며 피해국과 수 십 년 동안 공존해온 경제적 기반조차도 아무 망설임 없이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극우 정치인뿐만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일반적인 일본의 인간들이 그러고 있습니다. 즉 일반의 양심과 상식이 사라진 나라이자 국가주의에 언론은 침묵하고 국민들은 의식도 없이 국가의 정책에 순응하는 나라입니다. 이처럼 어떤 진실에 무관심하고 죄악에 아무런 의식도 없이 자기 일을 한다고 해서 죄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닌데 오히려 더 큰 가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은 아렌트의 분석처럼 1차 세계대전 후 자신들은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 내부의 적들 때문에 졌다면서 다시 군국주의 몰이를 했던 히틀러 집권기 시절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일본이 미국과 전쟁만 안 했으면 대동아공영권을 유지했을 것이라고 하며 일부 지도층의 판단미스를 패인으로 돌리고 자신들의 전쟁범죄는 모두 부인하고 자신들의 증거를 체계적으로 인멸하면서 있습니다. 난징학살이나 잔학한 식민지 지배 사실 그리고 위안부까지 증거가 차고 넘치고 아직도 피해자들이 살아 있는데도 말이죠.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세계 2차 대전의 전범으로 수많은 학살에 가담했던 아돌프 아히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위안부문제나 징용문제 그리고 타국의 최고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이 경제보복에 70% 이상 찬성을 한다는, 늘 쓰레기를 줍고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며 개인적으로 착하다고 하는 보통 일본인들이 아렌트가 말한 제대로 된 '사고력이 결여‘된 존재들이라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이들이 아베나 일본 우익의 왜곡에 현혹되어 2차 대전에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군으로 다시 변신할 가능성이 큰 위협적인 존재들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은 독일 최고의 전기 작가가 흥미진진하게 풀어 쓴 한나 아렌트의 삶과 철학이 담긴, 에반겔리셔 저술상 수상작이자 유네스코 문학상 노미네이트작이기도 한 책 자체로도 우수한 책이니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평범 속의 악을 논했던 저명한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에 대한 전기로서 요즘 국내외 정치적 상황과 연결해서 읽어보시면 더욱 좋을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