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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6월
평점 :
이 책은 단순히 일본의 과학기술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나 이야기에 그치는 책이 아닙니다. 1960년대 당시 ‘장래의 노벨상 수상자감’으로 불리던 물리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으로서 일본 학생운동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도쿄대 전공투 대표였던 저자가 일본의 비판적 지성으로 거듭나서 개국 이후 150년 일본의 과학기술 발자취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점은 일본의 과학기술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에까지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전쟁 막바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폭격을 당하자 일본에서는 패전의 원인이 ‘과학전에서의 패배’였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미국의 원폭 개발을 인류의 업적이라고 칭송까지 하는 ‘자가당착’이 빚어졌다고 합니다. 이것이 대국주의를 지향하는 내셔널리즘과 결합하면서 피폭국 일본이 원자력 개발을 자연스럽게 추진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전전에 거대 전함을 보유하는 것을 ‘일등국’의 조건으로 간주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후에는 원자력이 일본이 열강대열에 복귀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원폭 보유는 국가주의자에게 ‘초대국’의 증거이고, 핵기술과 원자력발전의 보유는 그에 버금가는 ‘일류국가’의 스테이터스 심볼이었던 것이죠.
원전은 완전경쟁 시장이 아니라 언제나 정부라는 고객이 구매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에서 군수산업과 동일하고 그런 점에서 전후판 총력전 체제를 상징하는 것이 원전산업으로, 이렇게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 없이 군국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된 원전 정책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파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메이지 유신 150년에 걸친 과학기술에 대한 환상에 종언을 고해야 할 때임을 일깨웠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 제목에 나와 있듯, 일본의 과학기술은 ‘총력전 체제’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서구 열강에 쫓겨 ‘식산흥업’과 ‘부국강병’을 위해 도입된 과학기술은 청일, 러일 전쟁과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발전했고, 이 과정에서 국가에 의한 과학기술의 총동원 체제는 일상화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일본의 과학기술은 전쟁을 통해서 아시아의 약소국을 침략하고 사회적 약자를 희생해서 발전을 이루어 왔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일본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으로 고도성장을 하고, 총력전 사상을 그대로 계승해서 전쟁으로 경제 대국을 일구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 과학자와 기술자는 아시아 침략에 대한 자각도, 전쟁 협력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았고, 대학의 자율권과 민주주의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유명한 회고록인 <나의 1960년대>를 통해 젊은 날의 꿈과 시대정신을 소상히 증언하는 그 연장선에서,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일본 과학기술의 태생적 한계를 고찰하고 역사적 반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발로 발생한 한일 경제 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근원을 알려주는 책으로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