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국 - 우장춘 박사 일대기
츠노다 후사코 지음, 우규일 옮김 / 북스타(Bookstar)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우장춘 박사에 대한 단순한 평전이 아니라 우장춘 박사가 태어나기 전 부친인 우범석이 한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과 당시 국제관계 등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고 한일 관계에서 대해서도 꼼꼼히 분석한 역사서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궁금해서 살펴보니 한-일 현대사의 비극을 소재로 한 이 책은 물론 <민비 암살>, <슬픔의 섬 사할린> 등을 펴낸 저명한 작가였는데 2010 타계하였습니다. 이 책도 1990년에 쓴 사실 30여 년 된 책입니다. 그렇지만 전혀 오래됐다는 느낌을 들지 않는 ‘신선한’ 책이었습니다.

 

사실 우장춘 박사는 단순히 씨없는 수박 등을 발명한 세계적인 과학자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 우범선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조선을 개화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고, 명성황후를 제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1895년(고종 32) 10월 8일 훈련대 해산 다음날인 을미사변 때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휘하장병을 이끌고 일본군 수비대와 궁궐에 침입, 명성황후 시해에 방조 내지 가담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는 명성황후의 시신에 석유를 부어 태우는 마지막 처리 과정에도 가담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는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여 살다가 일본에 정치적으로 망명해있던 명성황후의 측근인 고영근에 의해 1903년 12월에 살해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조선의 대역죄인이었고 다섯 살 때 살해되는 비극을 겪었던 우장춘의 일생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아비없는 혼혈 조선인으로서 극심한 빈곤과 주위의 학대와 차별을 받으면서도 학업에 열중하여 육종학자가 됩니다. 그는 당시 이승만 정부의 초청을 받아 1950년 귀국하여, 사망하던 1959년까지 만 9년 5개월간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중앙원예기술원장·원예시험장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연구 업적은 1926년「종자(種子)로써 감별할 수 있는 나팔꽃 품종의 특성에 대하여」를 비롯하여 모두 19편의 논문이 있는데, 초기에는 나팔꽃이나 피튜니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다가 드디어 겹꽃이 피는 피튜니아 계통을 육성해 냈다고 합니다. 귀국한 뒤로는 그의 지식을 바탕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일본에 의존하던 채소 종자를 국내에서 완전히 자급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우리나라 육종학도와 종묘기술자를 양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국내 업적으로 큰 것을 들면, 채소 종자의 국내 자급 해결 외에 무균종서(無菌種薯)의 생산으로 6·25전쟁 이후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1959년 8월 11일 사망하였고 국민의 애도 속에 사회장으로 치뤄졌습니다. 정부는 부산시문화상에 이어 두 번째의 문화포장을 수여하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조국이 드디어 나를 인정했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수년에 걸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하고, 찾아낸 자료를 바탕으로 우장춘 박사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냅니다. 이 책을 끌고 가고 있는 큰 줄기는 우장춘의 한국행에 대한 미스테리인데, 저자는 명성황후 암살에 관련된 아버지 우범선의 죄를 아들인 우장춘이 대신 씻고자 한국으로 온 것은 아닐까 추측합니다. 우장춘 박사의 업적은 물론 개인과 국가의 관계와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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