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스
제시 볼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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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조사를 의미하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2017년 그란타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이자 현대 영미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를 지닌 작가로 주목받는 저자의 최신 장편소설입니다이 책의 제일 처음 나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현대 미국 문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인 저자는 자신의 형을 반추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소설은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하며먼저 이 책의 인물들은 동시에 두 개의 공간을 여행한다고 말합니다첫 번째는 실제 세계인데 저자는 소위 언어의 사고팔기라고 불리는 현상이 텍스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언어의 상품화를 거부해서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책의 풍경은 가려져 있고 막연하다고 설명합니다이 소설의 인물들은 언어 자체를 횡단하는 듯이, 알파벳으로 구성된 두 번째 세계 A에서 Z까지 일련의 마을들을 횡단합니다.

 

실제 저자의 형인 아브람은 다운증후군이 있었는데말하는 법은 배웠지만 언어는 형에게 언제나 어려워서삶을 헤쳐 가는 형의 여정은 언어의 여정이었다고 합니다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에게 그렇겠지만 형은 더욱 힘겹게 분투해야 했는데저자가 집을 떠날 때마다 어김없이 형은 저자가 돌아온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 매번 의심했다고 합니다그때마다 형은 저자가 무슨 기나긴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 했고 저자는 형의 그런 행동을 기억하려 노력했고 배우려고도 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이러한 저자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소설입니다줄거리는 아내와 사별하고 시한부 인생 선고까지 받은 남자는 성인이 된 아들을 누가 돌봐줄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하여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들과의 마지막 여행을 떠납니다그것은 인구조사원이 되어 알파벳 순서로 표시되는 북방의 오지로 향하는 여행길로죽음의 순간이 가까워지는 아버지와 아들은 다양한 삶과 사연이 스며들어 있는 집들을 방문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풍광이 소개되며마지막 마을 ‘Z’와 가까워질수록 떨쳐버릴 수 없는 의문들과 자유의지애도기억의 힘그리고 치열한 부성애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처럼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형을 반추하고 있습니다아버지와 아들의 여행이라는 기본적인 골격을 짜고 단어 안팎과 사이사이에 잘 배치된 디테일 속에서 아들이 된 형의 초상을 그려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은 소설 곳곳에 녹아들어 다양한 형상으로 슬프고도 강렬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죠또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곳곳에 도사린 현실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작가의 통렬한 비판이 은유와 상징으로 펼쳐지는 멋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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