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괜찮아, 안 죽어 - 오늘 하루도 기꺼이 버텨낸 나와 당신의 소생 기록
김시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의사들의 신춘문예라 불리는 제18회 한미수필문학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펴낸 자신의 성장 에세이입니다. 이 책에는 분초를 다투며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응급의학 전문의로 10년, 또 10년은 동네 개원의로 살아온 응급의학과 의사가 흩어지는 순간에 대한 기록과 간헐적 단상의 에세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저자는 20여 년을 전문의로 지냈지만 여전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며, 뒤늦게 어른의 성장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삶과 죽음의 위태로운 경계에 놓인 이를 이 세상으로 다시 끌고 오기 위해 늘 시간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응급의학과 의사였던 저자는 어떤 환자를 만나든 ‘이 사람이 당장 죽을 것 같은가’를 먼저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에 따라 움직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네 의원으로 터전을 옮긴 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며칠 약 먹으면 좋아질 장염 증상을 가지고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사람들이 찾아왔고, 응급실에 가라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 귀 어두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상대하면서 지쳐 갔습니다.
정신없이 응급실을 뛰어다니며 축적되었던 아드레날린은 그저 집에서 좀 쉬면 좋아질 할매들의 콧물감기를 상대하기엔 너무 과한 것이었기에 저자는 언제든 진료실에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귀찮게 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상대가 더 다가오지 못하도록 방어벽을 쌓는 수단으로 호들갑을 떠는 환자들에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괜찮아, 안 죽어’라는 말을 선택했고 수시로 이 말을 되뇌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진료라는 것, 특히 동네 의원에서의 진료는 대화가 거의 전부라고 강조합니다. 환자는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를 말하고, 의사는 그 이야기를 듣고 궁금하거나 중요한 부분을 묻고 의사의 질문에 환자가 다시 대답하는 이 반복 과정이 진료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진단하고 로봇이 수술하는 시대라지만 진료의 기본인 문진은 여전히 꼭 필요하며, 중요한 과정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한때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 살기가 녹녹지 않다고 투정하는 사람들에게 ‘괜찮아, 안 죽어’라는 결론을 내어 주는 것이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제한된 결론 속에 스스로를 가두며 끊임없이 벽을 쌓는 동안 세상은 더욱 넓어졌고, 나는 점점 좁아지는 틈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저자를 다시 살려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서 ‘괜찮아, 안 죽어’라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인데, 그들은 끊임없이 찾아와 ‘힘들어 죽겠다’는 말로 나를 흔들어 깨웠고 마침내 ‘우리 죽지 말고 같이 살아가자’며 내 손을 잡아 일으켰고 자신을 깨워냈다고 고백합니다. 저자의 이 에세이들은 저자 자신의 소생 기록일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 의사가 진료를 하면서 겪는 경험담이 시니컬하게 또 풍자적으로 잘 표현된 에세이 모음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