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상처받은 게 아니라고 한다.
의미라는 놈에게 삶을 통째로 내줬을 뿐이라고.
개리 비숍의 『오직 행동만이 삶을 바꾼다』는 첫 장부터 독설이다. 옆에서 욕하듯 내 착각을 깨뜨린다. 나를 짓누르는 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내가 얹은 의미다. 방금 떠올린 생각과 감정마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한다.
물음표로 다가와서 느낌표로 끝나는 책이다.
가다머와 후설은 잘 모르겠다. 하이데거의 사상은 분명히 느껴졌다. 우린 인간이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 위에 실용 철학을 세운 책이다.
핵심은 무결성이다. 하겠다고 말한 것을, 약속한 시간에, 아는 최선의 방식으로 해내는 태도. 이 문장에서 이지영 강사가 들려준 '세븐일레븐' 선배가 떠올랐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서울대 선배. 사법고시 1차에서 100점 만점에 98점을 받았고, 커트라인은 80~82점이었다. 언행일치는 누구나 아는 말인데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니 뱉은 말만 제대로 실행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공자가 말을 먼저 내뱉는 걸 조심하라고 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비범한 사람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다. 자기가 뱉은 말을 무겁게 대하고, 반드시 몸을 움직일 뿐이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은 자신과 맺은 약속을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느냐에서 나온다. 내가 내게 한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스스로를 하찮게 취급하는 셈이다.
'지금'은 '언제'가 아니라 '어디'라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거기는 없고 여기만 있다. 흘러간 그때도, 오지 않은 그때도 없다. 결단하기에 지금보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고 책은 몰아붙인다.
'삶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겪어야 할 경험이다.' 이 문장에서는 『싯다르타』가 겹쳤다. 우리가 제자리걸음인 이유도 같은 데 있다. 인생을 살지 않고 자꾸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문제를 뜯어고치는 데 혈안이 되어 창조와 모험은 엄두도 못 내고, 삶은 쳇바퀴처럼 돈다. 무서웠다.
읽는 내내 한 생각이 따라붙었다.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라는 생각. 사람은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대로 산다. 언어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지까지 정한다. 쉽게 말하는 데만 애써왔는데, 이제는 시적으로 바라보며 언어를 바꿔보고 싶어졌다.
개리 비숍은 창조하라고 외친다. 내게 먼저 필요한 건 세탁비누 같은 언어였다. 정화력을 지닌 언어. 틈만 나면 지난 일을 곱씹고, 의미를 덧대고 있으니까. 사람으로 산다는 건 때를 묻히는 일이다. 때는 처음 묻을 때만 눈에 띈다. 그다음부터는 오염의 두려움이 '내가 오염되어 있다'는 의식마저 오염시킨다. 비누는 새것으로 바꿔 입히는 도구가 아니다. 본연의 빛을 캐내는 연장선이다.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개리 비숍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냥 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