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는 왜 계속 달리고 있을까!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오늘도 확인하고, 비교하고, 배우고, 고치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한병철의 『피로사회』가 겹쳐 떠올랐다. 오래 묵은 질문을 다시 꺼내 왔다. 나는 왜 이렇게 쉬지 못하는가.
책의 첫인상은 따뜻했다. AI는 답을 대신 써주는 도구라기보다 한 번 접어둔 마음을 다시 만져보게 해준 계기에 가깝다는 저자의 문장이 오래 남았다. 사례로 나온 할머니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생각을 글씨로 옮기는 일이 버거웠던 분이 이제는 말로 하면 AI가 받아 적고 정리해 준다. 그 정리본을 바탕으로 시를 짓는다.
다 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왔다. AI가 모든 것을 완성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처음부터 잘하지 않아도, 일단 꺼내볼 수 있는 자리까지는 데려다 준다. 만들어 보는 데까지 가본다는 것. 좋은 세상이다.
여기서 온선(온라인선생님) 저자는 더 생각하게 한다. AI가 시간을 줄여줄 수는 있어도 판단과 책임까지 대신하지는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오히려 더 자주 물어야 한다고.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뒤로 물릴 것인가.
업데이트 인간의 하루
이 대목에서 뜨끔했다. 작년에 배운 AI와 지금의 AI는 같은 이름을 달고 있어도 다른 도구다. 배울 것은 계속 불어나고, 일은 빨라졌는데 결정은 조금도 쉬워지지 않았다. 어제의 속도는 성실함이었다. 오늘의 속도는 느림처럼 보인다.
시키는 사람이 없는데 최신 상태를 유지하려 애쓴다. 표현을 빌리면 '없는 일을 만들어서 하는' 상태다. 가능성이 한꺼번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발이 멈춘다. 반가운 변화 앞에서 오히려 숨이 차오르는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읽을수록 『피로사회』가 계속 생각이 났다.
피로사회 한병철 저자는 현대 사회를 '~해서는 안 된다'가 지배하던 규율사회에서 '~할 수 있다'가 지배하는 성과사회로 넘어온 곳이라고 진단한다. 금지하는 타인이 사라진 자리에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성과주체가 들어섰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사람이니 맞서 싸울 상대도 없다. 피로는 고스란히 안으로 쌓인다. '갓생'이라는 말이 이 구조를 잘 보여준다. 쉬는 것조차 내일 더 잘 일하기 위한 준비가 된다. 목적 없는 멈춤은 사치로 취급받는다.
한병철 저자는 피로를 두 가지로 나눈다. 더는 할 수 없어서 쓰러지는 탈진의 피로가 있고,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무위의 피로가 있다. 앞의 피로는 사람을 고립시키고, 뒤의 피로는 세계와 타인을 향해 자아를 연다. 온선 저자가 말하는 '다 하지 않는다'는 나에게 이 무위의 피로 쪽으로 읽혔다. 능력이 모자라서 물러서는 게 아니다. 할 수 있음을 알면서 고르는 물러섬이다.
물론 『피로사회』에도 아쉬움은 있다. 진단은 날카로운데 그다음 걸음이 흐릿하다.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 책은 그 빈칸을 생활의 언어로 채워 준다. 줄인 뒤에야 남는 일이 선명해진다.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일을 옮겨 놓는 것이다.
멈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돈이 될지 몰라 시작한 일은 오래 남았다는 문장에서 한참 머물렀다. 나와 맞아서 계속했고, 계속하다 보니 잘하게 됐고, 그 일이 누군가에게 필요해졌을 때 비로소 돈이 움직였다. 처음부터 돈을 겨냥한 구조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좋은 연결은 많이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머물다 흘러가게 두는 일이다. 기준을 말하는 것은 관계를 끊자는 뜻이 아니라 계속 일하기 위해 조건을 맞추는 과정이라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갈등이 없으면 편하다. 다만 그 편함이 옳은 방향인지는 알 수 없다.
저자는 이런 질문도 던진다. 그만두고 나서 얼굴빛이 좋아졌다면, 이직하고 나서 얼굴이 펴졌다면 그 크기는 애초에 나와 맞지 않았던 게 아닐까. 조금씩 쌓아야 맞는 사람이 있고 한 방에 몰아쳐야 맞는 사람이 있다. 정답은 없다. 해답만 있다.
오늘 하나를 내려놓는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없는 일까지 만들어 하는 지금의 내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도구가 아니었다.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는 멈춤이었다.
멈춤은 게으름이 아니다.
선택이다.
오늘은 하나를 내려놓는다. 내려놓아야 남는 것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