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면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
삶은 나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
태어난 이유 같은 건 없다.
태어났기 때문에 이유가 나중에 붙는다는 것, 그러니 고통은 옵션이 아니라 기본값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위로를 기대하고 펼친 사람에게는 꽤 불친절한 시작이다. 이상하게 그 친절함이 먼저 안심이 됐다.
요즘 부쩍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지"라는 질문이 잦아졌다. 부처가 주는 깨달음이 필요했다. 답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질문을 좀 정확하게 다듬고 싶었다.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 책의 뼈대는 하나다. 고통의 본질은 저항이다. 삶이 힘든 게 아니라, 삶에 저항하는 태도가 힘들다는 것. '나'를 지키려고 안간힘 쓰는 걸 멈추는 순간 고통도 멈춘다는 문장 앞에서 잠깐 숨을 골랐다. 지금까지 고통을 없애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애쓰는 그 행위 자체가 고통을 키우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무상함도 같은 결이다. 붙잡고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변하고 사라진다.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행복의 근원이라는 대목에서는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퇴근하고 아무 생각 없이 다리 뻗고 눕는 그 순간이 행복이라는 뜻이었다. 별거 없어서 오히려 진짜였다.
전사가 되라는 부처의 말도 오래 남았다. 여기서 전사는 싸우는 사람이 아니다. 불편함을 걸림돌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내려놓고(보시), 해치지 않고(지계), 껴안고(인욕), 계속 나아가는(정진) 태도. 이 네 가지가 갖춰지면 애써 정답을 찾지 않아도 필요한 말과 행동이 저절로 나온다는 논리인데, 난 오히려 반대로 읽었다. 지금 내가 겪는 마음고생 대부분은 이 중 하나가 빠져서가 아니라, 넷 다 갖추려고 조급했던 거였다.
드라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의 마지막 대사가 떠올랐다. '모든 것이 덧없고 부질없다'는 그 말. 예전엔 허무하게 들렸는데 이 책을 통과하고 나니 다르게 읽힌다. 덧없다는 건 손 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여전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만 그 결과를 붙잡지는 말라는 것.
『싯다르타』의 강 의미가 다시 떠오른다. 강은 붙잡히지 않는다. 통과할 뿐이다. 나 또한 붙잡으려는 손을 좀 풀어야 했다.
책 한 권 읽었다고 저항을 멈추는 사람이 되진 않는다. 다만 이제는 안다. 지금 내가 불편하다면, 그건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뭔가를 붙들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
붙잡지 않는 연습, 오늘부터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