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매일 책을 읽었다. 아무것도 안 변했다.
3년 동안 하루 한 권씩, 1,000권 이상을 읽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허탈했다. 3년 안에 1,000권을 읽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말을 믿고 진짜로 그렇게 살았는데, 열린 건 새 세상이 아니라 그냥 다음 책 표지였다. 읽고, 서평 쓰고, 또 읽고. 성실했다. 근데 성실하기만 했다. 책을 삶에 연결하지 않고 그냥 읽기만 한 바보였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고명환 작가의 ≪독서의 기술≫을 읽으면서 그 3년이 다시 떠올랐다. 8년째 독서를 이어오며 2,000권 넘게 읽은 지금도, 이 책의 문장들은 남 얘기가 아니라 정확히 내 얘기였다.
왜 읽어야 하는가. 이 챕터가 특히 좋았다. 보이는 대로 살다 죽으면 억울하다. 생각한 대로 살려면 읽어야 한다는 것. ≪위험 예찬≫이 고통을 사랑하라고 말했다면, 고명환은 한발 더 나간다. 인생에 찾아오는 고통과 역경은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그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그냥 삶이 된다고. ≪데미안≫이 알을 깨고 나오라 했던 그 장면과도 이어졌다. 부딪치고 싸우고 고통을 직면해야 니체가 말한 어린아이처럼 즐길 수 있다는 것. 같은 결의 책을 읽어온 사람으로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반가웠다.
삶은 나에게 닥쳐오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다. '닥쳐온 고통'이 아니라 '흘러나오는 고통'. 그리고 그 뒤에 행복이 따라온다. 존재하지 않으면 고통도 없으니,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축복이라는 문장 앞에서 멈췄다.
지식 용접공 유영만 교수도 겹쳐 보였다.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 종착역도 중요하지만 중간에 들르는 간이역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결과를 좇으면서도 과정을 즐겨보려 애쓰던 요즘의 나에게, 같은 말을 하는 저자를 만난 게 고마웠다.
독서는 간접 경험이다. 직접 겪지 않아도 무수한 세상을 살아볼 수 있고, 그렇게 자란 안목으로 기회를 알아본다. 그런데 고명환저자는 여기서 선을 긋는다. 취미 독서 말고, 전투 독서를 하라고. 생존 독서로 내 안의 거인을 깨우라고. 취미로 읽던 3년과 전투로 읽기 시작한 그 이후가, 내 안에서도 정확히 그렇게 갈렸다.
소진되는 일은 절반으로 줄이고, 뿌듯한 일은 두 배로 늘려라. 다리가 떨리는 일은 줄이고, 심장이 뛰는 일을 늘려라. ≪독서의 기술≫ 문장에서 유영만 교수 향기가 난다. 많이 읽은 사람들이 저마다 필사해두고 곱씹었을 깨달음을, 다시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평범한 하루를 꾸준히 반복하면 비범이 된다. 끈기 없이는 불가능한 얘기다. 좋은 습관을 시스템으로 만들어서, 몸이 지쳐도 저절로 굴러가는 상태. 그게 몰입이다.
≪독서의 기술≫ 책은 실전적인 독서법도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한 시간 강제 독서, 빨리 읽는 법, 식스 투 나인(6 to 9) 독서법, 핸드폰으로 읽는 법, 끝까지 안 읽어도 되는 독서법, 친구 만나기 전 20분, 벽돌 책 읽는 법, 하루 10쪽. 독서를 막 시작한 사람에게 특히 유용할 방법들이다. 나에게 더 와닿았던 건, 독서 따분해질 때 벽을 뚫는 팁 들이었다.
가슴이 뛰는 문장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적어두라고 한다. 나중에 다시 찾으려 하면 못 찾는다. 나는 폰 카메라로 먼저 찍고 나중에 필사한다. 그런 문장을 만난 날은,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던 공자의 말이 떠오른다. 읽은 걸 진짜 내 것으로 만드는 건 결국 쓰는 일이다.
내 독서력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 요식업에서 실패할 때마다 해답의 길을 책에서 찾았다는 저자. 일이 막힐 때마다 책에서 멘토를 만나고 새 관점을 얻어온 나.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독서가 세계를 넓혀준다는 말은, 적어도 나에게는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금은 이틀에 한 권씩 읽는다. 그런데도 가끔 책이 따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고명환 저자는 그 따분함이 깊어져야 내 안의 위대한 나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엔 늘 지루함이 먼저 온다. 그 구간을 견디고 넘기면, 몰랐던 내 안의 능력이 슬며시 올라온다는 걸 8년 차가 되어서야 체감했다. 이 미묘한 감각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짚어내는 내공이 대단하다.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책에게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는 대목에는 완전히 동의한다.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내가 삶에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비로소 내 안에서 답이 올라온다. 그게 독서의 힘이고, 생각하는 인간만 누리는 특권이다. 질문하고 답을 받았으면, 이제 동사에 집중할 차례다. 실행. 책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이유를 고명환저자는 자기 깨달음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증명한다. 위기 속에서 답을 찾게도 하고, 버틸 힘을 주기도 한다. 전화위복을 몸으로 깨닫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남보다 나 자신을 먼저 귀하게 여기게 만든다.
개그맨 고명환, 아니 이제는 작가 고명환. 웃음을 주던 그 가벼움만큼 내면은 무겁다. 외유내강.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독서를 통해 기회를 잡고 실천해 나가는 그의 힘을 빌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