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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목욕탕
김지현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화장기 없이 옷하나 걸치지 않은 채,
자기 본래의 모습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곳,
더러워진 몸을 씻기 위해 들르는 그 곳, 목욕탕에서
세 과부가 모여 서로 자기 아픔(본모습)을 보여주고
그동안 쌓인 상처를 서로 씻어주는 동안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되는 이야기다.
옥신각신, 티격태격,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지만...
결혼 3년차. 현욱과 미령은 각자 자기일에 몰두하느라
서로에게 점점 소홀해지고 그게 힘들어 못견디게 될 즈음,
떠나지 말았어야 할 여행을 떠났고 그 바람에
미령, 시어머니 박복남, 친정어머니 호순, 이 세여자의 지긋지긋한 싸움은 시작됐다.
서해로의 여행을 떠난날, 교통사고로 남편 현욱을 잃고
3개월간 의식불명이었다 깨어난 미령.
교통정보센터에서 프리랜서 리포터로 일하고 있는 미령은 깨어난후
아직 남편을 잃은 충격과 사고 후유증만으로도 버거운데
말도 없이 미령의 전셋집을 팔아버린 시어머니 박복남 때문에
반지하 방 하나에서 친정어머니 정호순과 답답한 생활까지 하게 된다.
바람난 남편과 이혼후 아들 현욱을 홀로 키우며
30년간 목욕관리사, 소위 때밀이를 하고 있는 시어머니 박복남은
현욱 생전에도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을뿐더러
외아들 현욱의 죽음도 별로 슬퍼하지 않는 듯 보이고
그저 앉으나 서나 돈돈돈. 돈만 밝히는 여자로 보였다.
개마고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너무 큰 엉덩이 때문에
늘 놀림받기 일쑤였던 미령의 친정어머니 호순은
호순의 엉덩이에 반한 남편 남철을 만나 가난하지만 알콩달콩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철거명령이 떨어진 아파트에서 살다 아파트 난간 일부가 무너지며 떨어진 돌이
남편의 정수리를 찍는 사고로 남편을 잃은뒤
하루종일 뻥을 치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삶 자체가 돼버렸다.
엄마도 과부인데 딸 미령까지 과부가 됐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거기다 딸과 사위의 교통사고 보험금에 전세금까지 가로채간
얄미운 사돈 복남 집에 얹혀살게 됐으니
아무리 사돈네 쌀을 축내러 갔다지만 밤낮으로 그 밉상을 봐야하니
아무리 속좋은 호순씨라 해도 속이 바글바글 끓다못해 넘쳐났으리라~
책을 읽으면서 갑작스레 툭 튀어나온 이구아나가
그것도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의아했다.
생김새도 기이하고 따뜻한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데다
우툴두툴한 감촉, 거기에 건강하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건강치도 못해서
미령이 동물병원에 데려가게 하질 않나
미령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 그 징그러운 발톱으로 미령의 허벅지를 긁어놓기 일쑤다.
도대체 이쁜 구석이라곤 없어보이는 이구아나를 그것도 일부러 찾아내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복남의 목욕탕에 몰래 숨겨 들어가 온욕을 시켜주고
대체 뭔 생각일까 의구심이 들다가 문득 이구아나가
자식이나 며느리의 안위따위는 눈곱만치도 관심없는 듯한 차디찬 시어머니 박복남,
이도 아니면 아내가 유산한줄도 모르고 밤새 정신없이 CD를 구워대던
이기적인 남편 현욱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남편을 잃고 얼마나 상심했는지, 자기가 아이를 잃고 얼마나 절망적인지
도무지 관심 없어보이는 복남과 현욱.
차디차고 도무지 이쁜 구석이라곤 없는 이구아나가
미령의 허벅지에 계속 상처를 내는데도
그 모든걸 감내하고 자기의 따뜻한 치마 속을 계속 내주었듯이
이구아나와 다를바없는 차디찬 복남과 현욱이 미령을 아무리 상처준대도
미령의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안아주고
그들의 아픈 맘을 보듬어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런지~
생전에 꽃게탕을 유난히 좋아했던 현욱에게
꽃게탕 끓여주는걸 지긋지긋해했던 걸 미안해하면서
이구아나에게 칼슘제를 먹이고
미령 때문에 외로워했던 현욱에게 미안해하면서
이구아나에게 온욕으로 몸을 덥혀주는건 아니었을까?
이 책의 백미는
온몸에 피멍이 든 복남의 옷을 벗기고 사돈 호순이 복남을 씻겨줄 때였다.
평생 한번도 울지 않을 것 같던 복남이 호순의 손길이 닿자
펑펑 울음을 쏟아내는 소리가 어찌나 서럽게 들리던지
’아무리 남편이 바람 피고 자식이 살갑게 안대했다 해도 그렇지.
어쩜 저렇게 사람이 차가울 수가 있을까?’
내내 곱지 않게 보았던게 못내 미안할 지경이었다.
남의 때는 시원하게 벗겨내도
자기 때는 누구 하나 밀어주지 않았던 복남의 때를, 아니 상처를 호순이 벗겨주자
봇물 터지듯 솟구치는 그녀의 울음이 안타까웠다.
억지스럽지 않은 해피엔딩.
사실 해피엔딩이라고 하기엔 세 여자의 현실이 좀 답답했지만
미령, 복남, 호순이 서로의 아픔을 지금처럼만 보듬어주고 서로를 의지하고 산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그들의 행복을 마음속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