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만 닿아도 짜릿짜릿하던 감정은 어느새 사그라들고 남편살이 내 살 같고 내 살이 남편살 같아 둘이 살을 맞대고 있어도 아무 감흥이 없어질 때, 그래서 그만큼 서로에게 소홀해질 때 불륜까지는 아니라 해도 누구나 한번쯤은 지금의 아내나 남편이 아닌 이성친구를 꿈꾸게 되는 듯 하다. 첫사랑이 주는 두근거리는 설레임까지는 아니어도 누군가가 날 위해 뭔가를 계획하고 내가 기뻐하는 모습에 나보다 더 기뻐해주는 그런 느낌을 가져보고 싶다고 할까? 착한 남편이지만 이대로 계속 살기는 답답해 못견디겠다 생각한 결혼 6년차 주부 마야코는 불륜을 저지른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 즉 외모 학력 등등 거의 모든 면에서 누구보다 괜찮은 조건의 착한 남편이긴 하지만 마야코를 성적으로도 만족시켜주지 못할 뿐더러 시어머니 아야코와 죽이 잘 맞는 효자 남편 고이치에 대한 불만을 옛 남자친구인 노무라를 만나 해소한다. 노무라는 아이까지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기에 마야코 마음에 따라 만남도 헤어짐도 쉬웠지만 31살의 독신남, 미치히코와의 격정적인 만남은 마야코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일요일마다 쪼르르 본가로 달려가는 남편, 밤이면 자기를 거부하는 남편, 안생기는 아이를 가지라고 닦달하고 며느리를 무시해대는 시어머니. 나같아도 불만으로 가득찰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아예 작정하고 옛 남자친구 노무라에게 연락해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미치히코까지 장장 세다리를 걸친 마야코의 뻔뻔함이 같은 여자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좋은 말로 표현하자면 마야코가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도 될 수 있겠지만 나쁜 말로 표현하자면 도무지 생각이라곤 하지 않고 사는 여자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러가지 이유로 내가 못해본 경험을 마야코를 통해 해보고 저럴때 기분이 어떨까 은밀한 상상을 해보는 재미가 있어 은근히 짜릿하긴 했다. 오로지 욕구해소를 위한 노무라와의 끈적한 만남은 하나도 부럽지 않았지만 아가씨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제대로 데이트를 즐기게 해준 미치히코와 마야코의 만남은 솔직히 부럽기도 했다. '나도 저렇게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남자가 있었는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옛시절이 그립기도 했고 지금은 그렇지 못하단게 서글퍼지기도 했다. 별 죄책감 없이 불륜을 저지르고 실컷 즐겼던 마야코가 불행해지길 바란건 아니지만 마야코가 전보다 행복해보이지 않아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륜의 끝 = 행복" 이라면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없어져야 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