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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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게 참 허무해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즐거운 일이라곤 정말 눈곱만큼도 없는데 
살다보면 그나마 지금의 이 생활조차 그대로 유지하기 힘들 때가 있으니까요.

사실 요즘 제가 그렇습니다.
남편은 제 맘을 너무 몰라줘 서운하고 아들도 제 맘처럼 커주지 않아 속상하고
엄마는 병들어 고생하시다 얼마전에 돌아가셨고...
그나마 제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언니도 
제가 언니에게 기대기는 커녕 
오히려 제 어깨를 내주어야할만큼 지금 힘들어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오늘, ’인생이 뭐 이래?’ 라며 투덜대는 말을 달고 사는 저를
참 부끄럽게 만드는 암탉을 만났습니다.
바로 ’잎싹’ 이란 암탉이예요.

털이 다 빠져 앙상해진 목을 양계장 철망 밖으로 내밀고 바깥 마당을 동경하는 
암탉 한마리가 있습니다. 
이름은 잎싹. 
양분을 만들고 거름이 돼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아카시아 나무의 잎사귀가
부러운 마음에 스스로 잎싹이라 이름을 지은 암탉. 잎싹에게는 한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자신이 낳은 알을 품어 병아리로 부화시키고 싶은
아주 작지만, 이루기는 힘든 꿈이요. 
알을 열심히 낳아봤자 주인이 다 가져가버리는 양계장 안에서는 
잎싹의 꿈을 절대 이룰 수 없으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잎싹이 그토록 동경하던 양계장 밖, 즉 마당으로 나갈 기회가 생깁니다.
잎싹이 더이상 알을 낳지 못하자 
폐계라 해서 어느 구덩이에 다른 폐계와 함께 버려졌거든요. 
폐계중 살아있는 닭을 노리던 족제비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에서 
다행히 나그네라 불리우는 청둥오리 한마리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되고 
잎싹은 그날 헛간 식구들의 텃세와 멸시를 참은채 헛간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텃세에 헛간에서 쫓겨나게 되고 마당에서라도 살아보려 하지만
헛간 식구인 수탉 부부와 오리가족들, 문지기 개의 계속되는 텃세 탓에
그나마도 여의치가 않네요. 
자기를 옹호해줬던 나그네, 청둥오리마저 뽀얀 오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자 
잎싹의 외로움은 점점 깊어지고 
그러던 어느날, 청둥오리의 외마디 비명 소리를 듣고 잎싹은 더더욱 불안해지는데 
그때 잎싹의 눈앞에 잎싹이 그토록 품고 싶었던 알이 나타납니다.
더이상 알을 낳을 수 없는 잎싹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고
잎싹은 어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알을 자기 새끼인양 정성을 다해 품어주고
새끼로 부화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비록 자신의 알은 아니지만 알을 품어 새끼로 부화시키는데 성공했으니
잎싹의 꿈은 최소한 절반쯤은 이루어진 셈이네요.  

양계장에 편히 앉아 주인이 주는 모이를 배불리 먹고 알만 낳아주면 되는 생활.
힘들게 먹이를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낯선 동물들의 습격을 받을 리도 없고 비 가려주고, 따가운 해도 가려주고...
그럭저럭 자신만 만족할 수 있다면
야생에 사는 동물들에 비해 참 편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잎싹은 이런 생활이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다네요.
왜일까요? 
철망 안에 있음 갑갑하긴해도 최소한 안전하고, 춥고 배고플 걱정은 없긴 하겠지만
자기의 소박한 꿈조차 이룰 수 없는 곳을 보금자리라 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주인 여자가 알을 가져갈때마다 잎싹은 가슴이 텅 비는 것 같았다. 
 알을 낳을때 뿌듯하던 기분은 곧 슬픔으로 바뀌곤 헀다. 
 발끝으로조차 만져 볼 수 없는 알, 
 바구니에 담겨 밖으로 나간 뒤에는 어떻게 되는지 
 알 수도 없는 알을 일 년 넘게 낳다 보니 잎싹은 지쳐 버렸다."
- "마당을 나온 암탉" P 12 中 에서 - 

주인이 알만 품을 수 있게 해주었다면 
잎싹은 굳이 위험한 마당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을겁니다.
마당 식구들이 텃세를 부리지 않았다면 마당을 나가지도 않았을테고요.
자기가 품어 부화시킨 오리새끼의 안전만 걱정되지 않았다면 
다시 마당으로 돌아오지도 않았을테고
힘들여 부화시킨 오리새끼의 날개 끝을 자르려는 주인 부부의 말만 듣지 않았어도
안전한 마당을 다시 뛰쳐나가지도 않았겠죠.
이처럼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고~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잎싹은 포기를 몰랐고 자기의 꿈을 이뤄냈을 뿐더러 
오리 새끼도 목숨 걸고 지켜냈고 
나중에는 자기를 업신 여기던 집오리의 존경까지 받게 됩니다.

잎싹은 두려워할지언정 좌절이란 단어를 모르는 듯 했습니다.
자기 알을 품어본적은 없지만 남의 알을 품으면서도 누구보다 따뜻한 모성애를 배웠고
모성애란 바로 이런 것이다 몸소 온몸으로 보여줬고요.
자기가 품었던 오리새끼가 다 커서 제 갈 곳으로 날아가는 걸 지켜보며 
’왜 난 진작 날아보려는 꿈을 꾸지 않았을까?’ 자조 섞인 말을 하는 잎싹을 보면서
자식 키우는데 그 고운 세월 다 흘려보내시고 
병든 몸만 남아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네요.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그 작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마당으로 나왔고 자기 알은 아니지만 알을 품어 탄생도 지켜봤고 
그 새끼가 다 커 제 갈 길을 갈때까지 끝까지 보살펴줘 이제 제 할일 다 했다 생각했지만
정작 자기를 위한 소망 하나는 끝내 이루지 못한채 생을 마감한 잎싹의 삶이
우리네 어머님들의 그것과 닮아있어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남이 만들어준 삶에 자족하지 않고 불가능해보이는 꿈을 꾸어보고
그 꿈을 한단계 한단계 힘들게 일구어낸 잎싹을 영원히 잊지 못할거예요.
"꿈꾸는 자만이 꿈을 이룬다." 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꿈, 자유, 모성애 거기에 마음 깊은 울림을 주는 감동까지 
2000년 첫 출간이후 9년 세월동안 꾸준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 책의 진가를
전 오늘에서야 알았네요.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알게 돼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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