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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의 큰 목표를 지니고 살아간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격언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작이 정말 중요하지만 결국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한 걸음을 내 디딘 후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 또한 중요하다. 여기서 한 걸음이라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시작의 한 걸음, 중간의 한 걸음과 마지막 한 걸음은 보폭이 같기 때문에 목표 지점에 딱 보폭만큼 가까워진다. 작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매 순간 같은 보폭으로 걸어도 빠른 시일 내에 목표에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같은 보폭으로 걷기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게리 켈러, 제이 파파산은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도미노에 비유한다. 처음 도미노가 쓰러져야 다음 도미노가 쓰러질 수 있기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보폭은 매순간 일정하지만 도미노는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 책에 따르면 크기가 1인 도미노는 최대 크기가 1.5배인 도미노를 쓰릴 수 있다고 한다. 처음 쓰러진 도미노의 크기는 1이었어도 이 도미노는 열 번째 도미노에 이르러 38.44배나 되는 도미노를 쓰러뜨릴 수 있다. 즉 열 번째 도미노는 첫 번째 도미노보다 38.44배 멀리 있는 도미노를 쓰러뜨릴 수 있다. 본인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기위한 노력은 매 순간 걸음이 일정한 등차수열이 아니라 점점 커지는 도미노처럼 등비수열이 되어야한다.

등비수열처럼 목표에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될까? 정답은 시너지에 있다. 1+1=2이 아니라 1+1>2가 되는 경우 우리는 시너지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두 명이 각각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합쳐서 2지만 서로 잘하는 업무를 분업하여 3의 일이 가능해졌을 때 시너지가 일어난 것이다. 처음에는 1이었지만 다음 단계에선 1보다 큰 수가 된 것이다. 등비수열은 1보다 큰 공비를 가지면 처음에는 비록 작아보여도 단계를 거듭할수록 무한히 커진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위해 하고 있는 노력의 결과가 지금은 비록 하찮고 작게보이지만 등비수열처럼 결과를 낸다면 큰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첫 도미노는 내 궁극적인 목표에 있어서 작은 도미노이지만 한 인간에게 있어서 큰 도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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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시스템1과 시스템2로 나누어진다. 시스템1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직관적 사고, 시스템2는 우리에게 머리 속에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이성적 사고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가 무언가를 판단, 결정을 할 때 직관적 사고는 자동으로 작동하고 이후에 이성적 사고가 작동한다.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직관적 사고가 작동하는 방식과 이 직관적 사고가 어떻게 이성적 사고에 편향을 야기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이론을 알려준다.

직관적 사고는 노력이 필요없다. 거의 저절로 일어난다. 하지만 이성적 사고는 신경을 써야한다. 이 신경을 쓴다는 것도 자원처럼 무한정한 것이라 어느 정도의 할당량이 있으며 여러 일에 동시에 신경을 쓰기 힘들다. 예를 들어 키보드로 글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누가 17 곱하기 24는?하고 묻는다면 자연스레 나의 타이핑 속도는 느려지거나 멈춘다. 계산에 신경을 써서 타이핑이 느려지는 것이다. 여기서 신경을 쓴다는 것은 내가 의도적으로 노력을 한 것이며 피곤하다. 의도적으로 텍스트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행위인 일과 공부를 마친 후 피곤한 것처럼 말이다. 직관적 사고가 편안하여 이성적 사고가 게으름을 부리기도 한다. 물론 실생활에서 직관적 사고는 아주 유용하지만 상황에 따라 반드시 이성적 사고가 필요하며 이럴 때 직관적 사고에만 의존하면 엄청나게 나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으면 어떤 상황에서 직관적 편안함과 이성적인 사고의 게으름을 물리치고 의식적으로 이성적 사고를 해야하는지 알 수 있다.

직관적 사고의 편안함과 이성적 사고의 게으름을 물리치는 과정은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익숙한 일을 할 땐 의식하지 않는 수준에서 일을 진행할 수 있어 편안하다. 하지만 배운다는 것은 보통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의식해야할 것이 너무 많고 불편하다. 예를 들어 운전면허를 따고 첫 운전을 했을 땐 온 몸이 긴장되고 너무 많은 것이 신경이 쓰여 힘들다. 하지만 몇 달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운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처럼 본인의 성장을 위해선 처음엔 힘들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신경쓰며 그것을 무의식의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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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왕좌의 게임 1화에선 전 수관(핸드)인 존 아린이 죽어 로버트 바라테온이 에다드 스타크를 수관으로 임명하고자 윈터펠에 방문한다. 이 세 인물의 관계를 살펴보면 로버트 바라테온과 에다드 스타크는 존 아린의 종자였고 그래서 로버트 바라테온과 에다드 스타크는 아주 친밀한 사이다. 이 부분을 처음에 읽었을 때 나는 종자가 기사의 하인인줄 알았는데 어떻게 두 사람이 존 아린의 종자일 수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종자가 하인과 같이 낮은 신분으로 뒤치닥거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육을 목적으로 해당 분야의 권위자에게 보내진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기사의 종자는 기사의 잡일을 도와주며 기사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깨너머에서 보며 그 기사에게 무예를 배우고 나중에는 해당 기사가 기사 작위를 종자에게 수여해 어엿한 기사가 된다.

이 설명을 듣는 순간 대학원이 바로 떠올랐다. 대학원은 교수라는 그 분야의 권위자, 실력자가 있으며 연구실에는 교수에게서 가르침을 받기위한 종자인 대학원생이 있다. 대학원생이 박사 졸업을 하는 최종 관문은 자신이 연구를 주제를 교수와 박사학위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하여 내가 충분한 연구능력을 갖추었으니 박사학위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증명이란 것은 앞서 말한 교수와 심사위원이 발표를 듣고 그 대학원생의 연구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사가 자신의 종자에게 기사작위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도 교수는 자신의 대학원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다.

여기까지가 대략 5~6년 전에 생각한 내용이었다. 그 땐 아마 이렇게 생각했다. ' 와 대학원 시스템이 몇 백년 전에 있었던 서양의 시스템을 가져온 것이구나.' 최근 이 이야기에 추가할 내용이 하나 더 생겼다. 먼저 박정준 작가의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에 나온 글을 읽어보자.

길드에서 주로 10대 후반의 젊은이가 기술 좋은 장인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일을 배우는 도제제도가 있었다. 이들은 5~10년 정도 계약 기간 동안 노동에 종사하고, 이후 독립하여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저니(journeyman, 직인)의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마침내 정착하여 자신의 일을 하며 도제를 거느리는 마스터(master, 장인)가 된다.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박정준, p11

이 글을 대학원 버전으로 각색하면... '대학원에서 주로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연구 능력이 좋은 교수의 대학원 연구실에서 함께 생활하며 연구를 배우는 박사과정 제도가 있다. 이들은 5~10년 정도 학위 기간 동안 연구(과제)에 종사하고, 이후 졸업하여 돌아다니면서 연구하는 포닥(post doctor, 박사 후 연구원)의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마침내 정착하여 자신의 연구를 하며 대학원생을 거느리는 교수(professor)가 된다.' 종자 생활 뿐만 아니라 독립한 이후 생활도 정말 대학원생과 판박이다. 대학이라는 기관 자체가 서양에서 건너온 것이니 이렇게 비유되는게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시스템이 몇 백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유지되고 먼 곳인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다는게 사뭇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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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먹기만 해도 살이 찐다. 저저번 주에 일이 있어 토요일 저녁, 일요일 점심에 과식을 했다. 저번주 월요일에 몸무게를 재보니 무려 1.5 kg가 쪘다. 하지만 평소대로 먹으니 목요일 쯤 원래 몸무게로 돌아왔다. 요샌 점심, 오후의 간식, 저녁 이렇게 먹고 있으며 이외 다른 것을 더 먹으면 무조건 살이 찐다. 어떤 친구는 야식을 먹어도 살이 안 찌는데 나는 야식을 먹으면 그 살을 빼려고 러닝머신 위에서 뛰고 있어 사뭇 억울하다.

하지만 최대한 긍정적? 자기합리화? 하여 생각해보기로 했다. 첫째로 '내 위장이 정말 튼튼하구나'라고 생각했다. 내 위장이 소화를 잘하니까 먹는 만큼 내 몸으로 쑥쑥 들어와서 살이 찌나보다. 둘째로 유전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거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보기로 했다. 어떤 심리학 책에서 말하길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들면 불행해진다고 한다. 실제로 이미 내 한 몸을 부여받아 몸을 바꿀 수 없으니 평소보다 조금 먹고 운동을 더 해야지라고 생각하는게 정신 건강에 좋고 그렇게 하고 있다.

이 정도의 자기합리화 아니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도 나와 같은 체질로 좀 더 훌륭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런 살찌기 쉬운 체질로 태어났다는 것은 도리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즉 내 경우 체중이 불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 열심히 운동하고 식사에 유의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골치 아픈 인생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면 신진대사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결과적으로 몸은 건강해진다. 노화도 어느 정도는 경감시킬 것이다. 그런데 거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의 사람은 운동과 식사에 유의할 필요가 없다. 필요도 없는데 그런 귀찮은 짓을 일부러 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체력이 점점 쇠퇴해가는 경우가 많다. 의식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자연히 근육이 약해지고 뼈가 약해져 가는 것이다. 무엇이 공평한가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법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가운데에도 "정말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체중이 불어나서......"라는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이유로 오히려 하늘이 내린 행운이라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닐까? 적신호를 보기 쉬운 만큼 오히려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여간해서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p70-71

어떻게 보면 자기합리화 같긴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살이 잘 찌는 것도 축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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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of Ice & Fire 4v: A Game of Thrones, a Clash of Kings, a Storm of Swords, and a Feast for Crows (Boxed Set)
조지 R. R. 마틴 지음 / Bantam Books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드라마 보고 보니까 훨씬 더 재밋습니다. 하지만 영어라 읽는데 오래걸려요 ㅠㅠ 뭔가 고전적인 단어들이 많이 나와서 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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