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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베를린 - 도시와 주거의 새로운 길을 상상하기 ㅣ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100
이계수 지음 / 스리체어스 / 2023년 8월
평점 :
우리 주류 법학이나 법조계에 비판적인 법학자로 제가 다 따라가지 못해 간혹 버거운 때도 있으나 기존 체제의 틀을 항상 넘어보고자 하시는 자유로운 법학자로도 경외하는 이 교수님께서 페북에 올리신 글을 통해 이 책을 쓰신걸 진즉 알고 있었습니다.
진즉 읽어야했는데, 이 책이 많이 읽혀야겠다, 이 책으로 전국에서 북콘서트나 독서모임을 진행해야겠다, 국회의원이나 시장님들 모시고 공부모임시켜야겠다, 기자들 초청 행사들도 열어야겠다, 그래서 눈을 띄우고 마음을 열게 하고, 오해와 왜곡에서 벗어나게 하고, 도전에 나서는 계기를 마련해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한 책이었습니다.
겨우 본문 기준 160여 페이지에, 문고판 책이지만, 그 내용은 정말 좋았습니다.
1990년대 기준 베를린 전체 주택의 약 29퍼센트가 공공임대주택이었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베를린 당국이 그 대다수를 민간주택회사에 매각해 버린 상황속에,
1990년대 이전 베를린 사람들의 주택점거형태로 표출된 주거 또는 도시관련 사회운동과, 201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진행 중인 민영주택의 사회화 운동을 소개하는 이 책을 통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선,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1975년에 주택전용금지법 사건 결정때 판시한 다음 사항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주택이나 토지 소유권 행사의 절대적 자유가 너무 강한 우리에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적 소유권은 공공복리를 위해 행사돼야 한다는 헌법적 요청은 그 소유권의 객체(주택)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동료 시민(Mitbürger 함께 사는 시민)의 이익을 배려해야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 저자께서 강조하는 도시(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도시(그 지역)에 대한 권리"는, 지역민들의 삶의 환경, 여건, 관계망 등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바뀌는 것으로부터 안정적인 생활, 기존의 삶의 여건 등을 보호받을 권리라고 이해됩니다.
도시 재정비, 재개발 등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나 강제이주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위와 같은 "도시에 대한 권리"는 도시정책의 출발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임차주택의 전용에 대해, 소유권의 객체인 주택 및 토지는 다른 사회 구성원의 생활기반이므로 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만큼, 여기서 발생하는 사회적 의무성이 소유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정당한 근거가 된다는 글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으로,
1990년대 이전 빈집에 대한 점거운동, 임차인을 퇴거시킨 뒤 그 빈집을 일방적으로 개조하거나 재개발의 대상이 되게 해 도시 환경을 바꾸는 것을 저지하고자 하는 목적 등등을 위해 일어난 주택 점거 운동이
21세기에 시작된 운동이 아니고, 1960년대 유럽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운동인데,
특히나 20세기 베를린의 주택 점거운동은,
"토착의 생활환경, 토착의 사회구조"를 보존하는 것을 투쟁의 목표로 삼는 흐름이 다른 곳보다 더 강하고, 값싼 주거 공간 확보에 그치지 않고, 도시 공동체의 유지를 중요시한 특징이 있었다 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이런 주택점거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한가에 대한 독일 법학계와 법원의 판단과 태도인데,
주류적 해석이나 판결은 주거침입죄 인정인듯하나, 그렇게 볼 수 없다는 해석과 판결도 적지않은 점은 우리 법학, 법조 분위기와 다른 듯합니다
다음으로,
최근의 베를린 사람들의 운동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이전에 베를린시 당국이 민영주택회사로 넘긴 공공임대주택들, 대략 24만호를, 시장가격이 아닌 그보다 더 낮을 수 있는 가격에 "수용"하자는 새로운 방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민영주택회사의 사회화 운동은,
주택 등을 포함한 생산수단을 "사회화"할 수 있는 독일(연방)기본법 15조와 사유 재산에 대한 공적 사용을 위한 수용 제도를 인정하는 베를린 헌법 23조를 기초로 하는데,
베를린 사람들은 실제 민영주택회사들의 대다수 주택을 수용방식으로 사회화하기 위한 집행 법률을 베를린 정부(와 의회)가 제정하도록 할 것인지를 묻는 국민투표(표결)운동을 진행했고,
그 결과 2021년에 국민표결 참여 유권자의 57.6퍼센트가 찬성했는데,
결과도 인상적이지만, 이미 주택의 사회화를 가능하게 하는 독일 기본법 15조부터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이 국민표결결과에 따라 법률제정을 해야하는 베를린정부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안 움직이는 상태라 실제 사회화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 국민표결이 무효화된 것도 아니어서 앞으로의 베를린의 길이 더 주목되는 상태라는 저자의 지적에 같은 마음입니다.
한편 독일의 주택정책의 골자를 이 책을 통해 배운 바로는,
임대주택을 자가 주택보다 더 중시하고,
공공임대주택 숫자의 확대보다는 민간 임대주택에 대한 (공적)관리 강화에 촛점을 두고,
임대주택 시장 행위자, 즉 민간영역에 속하는 임대인에는 민간주택회사뿐만 아니라, 주택조합, 노동조합, 공익적주택건설협회, 교회 등이 많은 곳이 독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야를 넓혀준 이 책과 저자, 출판사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