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폭력 -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되는 폭력 이야기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손희주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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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크게 세 개의 챕터로 구분되어 있는데, 첫 번째 챕터는 감정 폭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과 대표적인 유형, 감정 폭력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전반적으로 설명한다. 두 번째 챕터는 부모-자식, 연인 또는 부부, 회사, 군대와 스포츠, 의료계(의사-환자), 사회로 영역을 나누어 감정 폭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명확하게 예를 들었다. 세 번째 챕터는 감정 폭력의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어떻게 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는지 알려준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심리 테라피(?) 책과 다른 점은 감정 폭력이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제 신경성 위염, 위궤양 정도는 익숙한 단어지만, 정서적 폭력과 스트레스는 실제로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만성 염증과 통증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하면서 이로 인한 질환이 더 넓은 범위에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내용이 사이비 같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독일에서 대학병원 의사로 재직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뒷부분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참고 문헌이 9쪽에 달했기 때문에 나는 큰 반감 없이 대부분의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주석만 달아놓은 게 아니라 본문에서도 어떤 기관의 어떤 사람이 발표한 내용인지를 언급했고,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항상 인정했기 때문에 성급하게 일반화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만 위험에 처한 환자를 일찍 알아차릴 수 있는 의사용 지침서나 추천서가 아직까지 너무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 폭력에 대해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중략)… 또 원인불명의 질병이나 통증이 나타났을 때, 혹시 정서적 폭력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볼 여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감정 폭력, 89 p.

그리고 좋았던 점은 피해자에게 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강해지라고 종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 또한 자신에 대한 폭력이기 때문에 마음이라도 편하게 가지라고 말해준다는 점이다.

폭력의 가해자에게 "우리 서로 대화를 나누는게 좋겠어.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라고 대답하는 방법도 있다. 마음이 편안할 때에 진지한 대화를 할 기회를 주고, 시안에 따라서는 결론을 짓고, 가능하다면 나와 같은 의견을 내줄 사람을 동석시키는 일이 도움이 된다. 이런 방법들로 상황을 벗어나는 것은 절대 비겁하지 않다.

감정 폭력, 236 p..

그리고 이 책을 읽는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도 감정 폭력을 인지하고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한다. 마냥 부둥부둥 해주는 건 아니고 짤막한 챕터로 '공감 능력도 학습을 통해 키울 수 있다' 정도로 언급하긴 하지만. '가해자도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들이니 이해해라' 이런 의도라고 느껴지지 않고 입장이 확실한 편이라 읽기 편했다.

책을 읽으면서 직장 상사가 떠올랐는데, 나에게 가하고 있는 어떤 폭력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감정 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돼서 놀랐다. 매일 불평만 하고, 사실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좋으면서 (티도 다 난다) 입으로는 나에게만 일을 시킨다고 투덜거리고, 20년 동안 같이 일했다는 상사에게 왜 아직도 벌벌 떠는지도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감정적 상처에는 면역이 없다'라는 소제목을 읽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원이 실장을 보며 생각하기엔 좀 이상하긴 하지만 '내일은 한 마디 더 걸어드려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내가 감정 폭력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될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다시 읽어봐야겠다. 가끔 '이런 책을 진짜 피해자가 읽으면 더 상처가 되지 않을까'싶은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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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웨이 아웃
스티븐 암스테르담 지음, 조경실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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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도시에서 ‘961법안’이 통과된다. 이른바 난치병 및 암 말기 환자 961명을 대상으로 한 안락사 추천 법안이다. 961이 통과되자, 머시 병원에서는 이에 맞춰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엄격한 프로토콜을 거쳐 안락사 대상에 오른 환자들은 ‘넴뷰탈’이라는 약물을 마시고 죽음을 맞는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완화치료를 담당하던 남자 간호사 에번은 이 프로그램에 안락사 어시스턴트로 지원한다. 그는 병실에서 진행되는 대화를 녹취하고, 환자와 가족의 서명을 받고, 넴뷰탈이 담긴 컵을 환자에게 건넨다. 그렇게 마지막 ‘의식’을 치르고 나면, 시신을 정리해 안치소로 보내고 사후보고서를 작성한다.

“내 차례가 되면 네가 그 마법의 약을 가져다줘야 해.”

죽음을 향해 속도를 높이는 사람들, 그중에 엄마 ‘비브’가 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위와 같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사실은 안락사보다는 자살 도우미이다. 작중의 사약(?)인 '넴뷰탈'은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당사자의 손으로 직접 마셔야 한다. 하지만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환자들에 한해서 처방과 동의서에 의해 진행되니까 안락사도 틀린 말은 아니다.

주인공인 에번은 안락사 어시스턴트로써 스스로 죽음을 결정한 사람들에게 치사량의 약물을 가져다주고 지켜보는 일을 하지만 첫 번째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죄책감보다 영웅 심리에 가까운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빨리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번에게는 어릴 적 (자살인지 사고인지 불분명한) 아빠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았고, 엄마와 수시로 이곳저곳 옮겨가며 살아온 것 때문에 어느 한 곳이나 사람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다. 그리고 양성애자이고, 현재는 남자 두 명과 '쓰러플'(세 명이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관계이다. 소수자 중의 소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에번의 심리는 불안정해 보인다. 두 남자와 주기적으로 관계도 가지고 (굉장히! 적나라하게 묘사되므로 호모포비아거나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이 점을 고려하길 바란다) 그들 또한 에번과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에번은 힘들 때 둘을 떠올리면서도 먼저 찾아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제일 힘든 순간에는 둘을 떠날 계획을 한다.

에번의 엄마인 비브는 조금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느껴졌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쾌활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중년이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그런 면에서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에 나오는 엄마랑 비슷한 느낌을 준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비브는, 자신의 몸 상태가 정말로 나빠진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아들에게 '넴뷰탈'을 받기를 원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안락사 당사자와 유가족들은 정말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가족들 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당사자는 빨리 고통을 끝내고 싶어 하지만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자며 우는 유가족, 약을 통한 죽음을 지켜보고 자신도 저렇게 죽고 싶다며 얼굴에 화색이 도는 사람... 만약 이게 내 일이 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일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결말을 읽고, 뻔하지만 죽음은 멀리서 볼 때와 내 주변에 일어날 때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가 합법화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나도 그중 하나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가족 모두의 서명을 받고, 약물이 오남용되지 않게 관리하는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 말이다.

작가의 본업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작중에서 환자를 직업적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은 종종 눈앞의 죽음에 대해 차갑고 무관심해 보인다. 심지어 죽음 앞에서 '이 케이스를 끝내면 내가 벌게 될 돈'을 계산하기도 한다. 이 점이 정말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식하지도 못하는 건강함'이라는 말이 초, 중, 후반에 걸쳐서 여러 번 반복되는 걸 보면 작가는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전체적으로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대부분 이해가 가서 좋았다. '나도 저 사람들 중 하나겠지',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따라갈 수 있었다. 최근에 본 어떤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감정 기복이 심한데 전혀 이해도 되지 않고 이입도 되지 않아서 그냥 감정조절장애가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고 담백한 문체로 감정을 충분히 묘사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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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이 말해도 당신보다 낫겠다 - 오해를 만들지 않고 내편으로 만드는 대화법
추스잉 지음, 허유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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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는 읽어 본 적이 없다. '너만 힘든거 아니야' 아니면 '거짓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이 정신 못 차리게 입 터는 법 알려드립니다' 이런 식이라는 편견이 있어서... 심지어 이 책은 작가가 대만 사람이다. 대만 사람이 알려주는 말하기 방법이라니...? 물론 말 잘하는 것과 국적은 상관이 없지만, 일단 언어도 다르고 대만에서 뜻하는 '말 잘하는 것'과 우리나라에서 뜻하는 '말 잘하는 것'이 서로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의심을 했다. 그런데 이 책 소개에 그 동안 내가 갖고 있었던 편견이랑 정확히 반대되는 문장이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말하기 비법을 화려한 언변 구사 능력이나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적 유창함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전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하기의 목적을 가지고 자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태도만 있다면, 기본적인 존중을 받으며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고.

기본적인 존중을 받으며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특히 상대방이 직장 상사인 경우에), 정말 내가 원하는 거였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프롤로그를 읽는 동안 이 사람은 정말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화술'을 배우는 것보다 '말하기'의 본직을 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 협상의 고수가 되길 바란다면, 그런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자기계발서 코너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있으므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그렇게 전략적으로 말해야 할까? 나는 몹시 내성적인 사람이다. 서로 속고 속이는 비즈니스의 전쟁터에서 승리하는 필살기를 알려주는 자기계발서는 아주 강력한 항생제 같아서, 어쩌다 병세가 심각할 때 한 번쯤 사용할 수는 있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영업왕이나 정치인, 명연설가,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말할 때 기본적인 존중을 받으며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펭귄이 말해도 당신보다 낫겠다」, 추스잉, 28-29 p

책에서는 크게 10가지(인터뷰/모의 UN 회의/라디오 진행/TV 프로그램 진행/강연/아르바이트/철학적 대화/가족과 친구/NGO 업무/다문화 직장)의 말하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경우에는 그 중 두세 개가 해당될까 말까였지만, 의외로 '라디오/TV 프로그램 진행으로 배우는 말하기' 챕터에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그저 말을 잘 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어떤 생각을 거치고 말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원했던 건 말 그대로 '존중받는 것'이라기보다는 '헛소리하는 상사에게 웃으면서 꼽(?)주는 법' 에 가까웠던 것 같다. 작가는 그런 처세술은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작가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나에게는 작가/강연자에게 동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책/강연 전체를 싸잡아서 불신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작가는 책 전반에 걸쳐서 '나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건 당신이 재능이 있기 때문이지 않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작가는 쉽다고 한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본인의 녹음된 목소리를 듣는 것, 인터뷰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고 했다. 재능있는 사람이 말만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겪어본 사람이 말해주는 조언에 더 가까웠다. 이런 느낌이 드는 작가는 정말 오랜만이다. 지은 책이 40여 권이라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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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야 - 2019년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다이앤 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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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로 요약하면, 어릴 때부터 학부모가 된 나이까지 부모에게 계속 상처받아온 사람이 자신의 상처를 끄집어내고 마주하는 내용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갈수록 맞지 않는 가족과 잘 지내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중학생 때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가족을 바라보는 데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소설 속의 주인공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해서 읽어 보았다. 참고로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주인공과 비슷하게 실제로 작가 또한 밴쿠버에 살고 있고 이란계 남편과 딸 한 명이 있으며, 클래식을 좋아하고 교통사고를 겪었다는 것까지 작가와 주인공이 많은 부분 겹쳐 보인다. 게다가 작가의 고향이 대구라고 하는데 작중 주인공의 어머니는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수필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대부분이 굉장히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문장들이다. 오늘은 저녁으로 뭘 준비하고, 딸을 데려다주고 나면 집에 와서 빨래를 돌리고 장을 보고, 하는 식의 일상이 나열되다가, 한국에서 혼자 살고 있는 엄마로부터 전화가 오는 순간 평화가 깨진다. 또 다른 날은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도 갑자기 엄마에 대한 원망을 떠올린다.

  주인공의 엄마는, 아들 내외가 한국에 살고 있지만 매번 딸에게 전화해서 감정적 폭력을 행사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주인공은 그런 엄마의 폭력을 묵묵히 참다가 소설의 중간부터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 변화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치료받던 도중 마사지 치료사(우리나라의 도수치료사와 비슷한 것 같다)가 지금 이 근육이 아픈 것은 부모를 원망하는 감정 때문이라고 얘기한 것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그동안은 엄마에게 마냥 져주고 갈등을 피하던 주인공이, 굳이 기억하려고 하지 않았던 상처들을 회상하고 엄마를 더 원망하기도 하고 엄마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아쉬운 점은, 내가 기대했던 것이 소설을 통해 충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느끼기에 그 모녀의 갈등은 전혀 극복되지 않았다. 엄마는 변하지 않았고, 주인공은 마지막엔 결국 다시 먼저 져주고 받아주는 딸로 돌아왔다. 주인공의 엄마는 주인공이 어떤 마음인지, 왜 본인을 서운하게 만드는지(본인이 서운하다고 느끼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공의 가족은 몸이 회복될 때쯤 작년에 못 갔던 휴가를 가자고 얘기한다. 교통사고 이후에 응어리진 감정 때문에 더 아팠던 몸이 회복되었으니 그걸로 다 된 건가? 근본적인 해결은 전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리고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해소될 때마다, 그 시발점이 공감되지 않았다. 첫 번째 변화는 위에서 언급한 치료사의 '근육이 아픈 것은 마음 때문'이라는 발언(?)에서 시작되고, (물론 주인공도 그 발언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중후반에서는 TV프로그램에 나온 영매가 출연자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연결되어 출연자의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는 장면을 보고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물론 감정이야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들었던 '귀농했다가 도시로 돌아갈까 고민하는 주인공이 흙을 밟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는 점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혹평을 받았다'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제목이 왜 '로야'인지도 모르겠고, 주인공이 굉장한 의미를 부여했던 '호야'라는 꽃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수상작이라고 하니.... '내가 부족하여 미처 이해하지 못한 어떤 부분이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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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경제 공부 - 경제 공부, 하루 30분이면 충분하다
곽수종 지음 / 메이트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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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때 사탐이 아닌 과탐을 배웠고, 대학교에서도 경제학 입문을 수강신청했다가 오티만 듣고 드랍했던 기억이 있다... 경제는 지금까지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올 초에(가능하면 2월 안으로) 독립을 계획하고 있다. 자취 경험은 있지만 이번에 독립하면 본가로 다시 들어오지 않을 계획이기 때문에 감회가 새롭다. 그래서 이제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정말로 경제를 알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의무감으로 읽어 보았다. 사실 내 목표는 경제 천재가 돼서 자산을 불려야지 이런 건 아니었고, 그냥 경제 기사를 읽을 때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경제 공부, 하루 30분이면 충분하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이다. 표지에는 '경제 공부는 처음입니다만?'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나처럼 정말 경제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맥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요 경제 용어를 가나다순으로 나열한 방식이라서, 제목 그대로 하루에 30분씩 읽기는 좋다. 매일 조금씩 끊어 읽기에는 편한 구성인데, 각 단어의 설명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꽤나 유명한 사건인 것 같지만, 경제 입문자인 사회 초년생은 볼셰비키 혁명이 뭔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뭔지 모른다... 정말 처음부터 알려주기를 바란 건 욕심이었을까? 기억을 되짚어 보면, 오티만 듣고 드랍했던 경제학 입문의 교재는 '맨큐의 경제학'이었다. 도서관에서 본 맨큐의 경제학이 너덜너덜했던 걸 보고 '경제 학도들에게는 지긋지긋한 책이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크기도 크고 두께도 정말 어마어마했다. A to Z를 바란다면 그런 전공 책을 읽어야 했던 걸까...

쉽게 쓰려는 노력의 일환이었겠지만, 중간중간 삽입된 처음 보는 경제학자의 이름이나 수없이 많은 국제기구의 이름도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맨 뒤에 주요 단어 찾아보기라는 색인 페이지가 있긴 하지만, 단어의 뜻을 설명하는 페이지가 아니라 단순 언급된 페이지를 모두 표시했기 때문에 모르는 용어가 나올 때마다 찾아보기에도 약간 무리가 있었다.

물론 이 책이 너무 쉽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경제 공부가 '처음'인 사람이 읽기에는 다소 불친절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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