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웨이 아웃
스티븐 암스테르담 지음, 조경실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가상의 도시에서 ‘961법안’이 통과된다. 이른바 난치병 및 암 말기 환자 961명을 대상으로 한 안락사 추천 법안이다. 961이 통과되자, 머시 병원에서는 이에 맞춰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엄격한 프로토콜을 거쳐 안락사 대상에 오른 환자들은 ‘넴뷰탈’이라는 약물을 마시고 죽음을 맞는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완화치료를 담당하던 남자 간호사 에번은 이 프로그램에 안락사 어시스턴트로 지원한다. 그는 병실에서 진행되는 대화를 녹취하고, 환자와 가족의 서명을 받고, 넴뷰탈이 담긴 컵을 환자에게 건넨다. 그렇게 마지막 ‘의식’을 치르고 나면, 시신을 정리해 안치소로 보내고 사후보고서를 작성한다.

“내 차례가 되면 네가 그 마법의 약을 가져다줘야 해.”

죽음을 향해 속도를 높이는 사람들, 그중에 엄마 ‘비브’가 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위와 같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사실은 안락사보다는 자살 도우미이다. 작중의 사약(?)인 '넴뷰탈'은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당사자의 손으로 직접 마셔야 한다. 하지만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환자들에 한해서 처방과 동의서에 의해 진행되니까 안락사도 틀린 말은 아니다.

주인공인 에번은 안락사 어시스턴트로써 스스로 죽음을 결정한 사람들에게 치사량의 약물을 가져다주고 지켜보는 일을 하지만 첫 번째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죄책감보다 영웅 심리에 가까운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빨리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번에게는 어릴 적 (자살인지 사고인지 불분명한) 아빠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았고, 엄마와 수시로 이곳저곳 옮겨가며 살아온 것 때문에 어느 한 곳이나 사람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다. 그리고 양성애자이고, 현재는 남자 두 명과 '쓰러플'(세 명이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관계이다. 소수자 중의 소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에번의 심리는 불안정해 보인다. 두 남자와 주기적으로 관계도 가지고 (굉장히! 적나라하게 묘사되므로 호모포비아거나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이 점을 고려하길 바란다) 그들 또한 에번과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에번은 힘들 때 둘을 떠올리면서도 먼저 찾아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제일 힘든 순간에는 둘을 떠날 계획을 한다.

에번의 엄마인 비브는 조금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느껴졌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쾌활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중년이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그런 면에서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에 나오는 엄마랑 비슷한 느낌을 준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비브는, 자신의 몸 상태가 정말로 나빠진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아들에게 '넴뷰탈'을 받기를 원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안락사 당사자와 유가족들은 정말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가족들 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당사자는 빨리 고통을 끝내고 싶어 하지만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자며 우는 유가족, 약을 통한 죽음을 지켜보고 자신도 저렇게 죽고 싶다며 얼굴에 화색이 도는 사람... 만약 이게 내 일이 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일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결말을 읽고, 뻔하지만 죽음은 멀리서 볼 때와 내 주변에 일어날 때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가 합법화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나도 그중 하나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가족 모두의 서명을 받고, 약물이 오남용되지 않게 관리하는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 말이다.

작가의 본업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작중에서 환자를 직업적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은 종종 눈앞의 죽음에 대해 차갑고 무관심해 보인다. 심지어 죽음 앞에서 '이 케이스를 끝내면 내가 벌게 될 돈'을 계산하기도 한다. 이 점이 정말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식하지도 못하는 건강함'이라는 말이 초, 중, 후반에 걸쳐서 여러 번 반복되는 걸 보면 작가는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전체적으로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대부분 이해가 가서 좋았다. '나도 저 사람들 중 하나겠지',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따라갈 수 있었다. 최근에 본 어떤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감정 기복이 심한데 전혀 이해도 되지 않고 이입도 되지 않아서 그냥 감정조절장애가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고 담백한 문체로 감정을 충분히 묘사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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