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이 말해도 당신보다 낫겠다 - 오해를 만들지 않고 내편으로 만드는 대화법
추스잉 지음, 허유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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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는 읽어 본 적이 없다. '너만 힘든거 아니야' 아니면 '거짓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이 정신 못 차리게 입 터는 법 알려드립니다' 이런 식이라는 편견이 있어서... 심지어 이 책은 작가가 대만 사람이다. 대만 사람이 알려주는 말하기 방법이라니...? 물론 말 잘하는 것과 국적은 상관이 없지만, 일단 언어도 다르고 대만에서 뜻하는 '말 잘하는 것'과 우리나라에서 뜻하는 '말 잘하는 것'이 서로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의심을 했다. 그런데 이 책 소개에 그 동안 내가 갖고 있었던 편견이랑 정확히 반대되는 문장이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말하기 비법을 화려한 언변 구사 능력이나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적 유창함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전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하기의 목적을 가지고 자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태도만 있다면, 기본적인 존중을 받으며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고.

기본적인 존중을 받으며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특히 상대방이 직장 상사인 경우에), 정말 내가 원하는 거였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프롤로그를 읽는 동안 이 사람은 정말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화술'을 배우는 것보다 '말하기'의 본직을 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 협상의 고수가 되길 바란다면, 그런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자기계발서 코너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있으므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그렇게 전략적으로 말해야 할까? 나는 몹시 내성적인 사람이다. 서로 속고 속이는 비즈니스의 전쟁터에서 승리하는 필살기를 알려주는 자기계발서는 아주 강력한 항생제 같아서, 어쩌다 병세가 심각할 때 한 번쯤 사용할 수는 있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영업왕이나 정치인, 명연설가,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말할 때 기본적인 존중을 받으며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펭귄이 말해도 당신보다 낫겠다」, 추스잉, 28-29 p

책에서는 크게 10가지(인터뷰/모의 UN 회의/라디오 진행/TV 프로그램 진행/강연/아르바이트/철학적 대화/가족과 친구/NGO 업무/다문화 직장)의 말하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경우에는 그 중 두세 개가 해당될까 말까였지만, 의외로 '라디오/TV 프로그램 진행으로 배우는 말하기' 챕터에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그저 말을 잘 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어떤 생각을 거치고 말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원했던 건 말 그대로 '존중받는 것'이라기보다는 '헛소리하는 상사에게 웃으면서 꼽(?)주는 법' 에 가까웠던 것 같다. 작가는 그런 처세술은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작가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나에게는 작가/강연자에게 동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책/강연 전체를 싸잡아서 불신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작가는 책 전반에 걸쳐서 '나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건 당신이 재능이 있기 때문이지 않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작가는 쉽다고 한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본인의 녹음된 목소리를 듣는 것, 인터뷰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고 했다. 재능있는 사람이 말만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겪어본 사람이 말해주는 조언에 더 가까웠다. 이런 느낌이 드는 작가는 정말 오랜만이다. 지은 책이 40여 권이라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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