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1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일 비가 내렸다. 간밤에는 꿈자리가 좋지 못해서 잠에서 깨어 시계를 쳐다보고는 한숨을 지었다. 새벽 두시. 아무리 휴일이라지만, 딱히 해야 될 일도 없었지만 내 처지가 너무 서글펐다. 아니라 다를까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는 그간 계속 염두에 두었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싶었다. 뭐 맘 같으면 한 한달 정도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서 아무말 없이 독서와 산책을 하면서, 배고프면 먹고, 잠오면 자는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내 자신 매인 처지가 있는 만큼 3일 정도 만이라고 그렇게 실천에 옮기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곳이 어디에 있는지가 먼저 막막해졌다. 그래 휴대폰 검색창에 ˝인적 드문˝이라는 키워드를 써넣다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미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인적드문 장소가 정말 그런 곳 이겠는가, 하는 생각에...... 소로우 처럼 내 삶의 군더더기를 모두 떼어내고 살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싶었는데, 나라는 사람은 막상 생각은 있어도 그 구체적 방법에서 막막해하는 그런 형편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사려 깊게 살고, 인생의 본질적인 것들만을 직면해보고, 인생의 가르침을 내가 터득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으며,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나는 산 게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가피하다면 모를까 나는 체념을 실천하고 싶지도 않았다.˝ (118-119쪽)

매일 매일이 잡념이 떠오르고 물리치는 연속이다. 심지어 꿈속에서 까지 시달리다보니 수면부족으로 정신적 탈진 상태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 중2병에 걸렸냐고 비웃던데, 전혀 틀린 말이 아닌 것이 그 나이 또래가 겪는 비슷한 조건과 상황에 내가 처해있는 것이다. 다만 사춘기는 성적 충동과 사회제도간의 갈등이라면, 내가 겪고 있는 사십기는 내가 바라는 삶과 처해있는 현실간의 충돌과 괴리에서 비롯된다는 차이만 있는 것이다. 공자는 ‘마흔 살에는 (여러 가지 지식을 익혀서) 미혹되지 않았다(四十而不惑)‘ 라고 했는데, 도대체 그 나이에 어떤 지식을 익혀야 미혹에서 초연할 수 있을까. 오늘 보니 소로우도 비슷한 말을 하던데 도대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며 정신이 어떻게 신체의 모든 부분과 기능에 파고들며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시급하게 찾았던 것은 구체적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노력에서 지혜와 순수성이 온다. 나태에서는 무지와 관능적 욕망이 온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관능적 욕망은 게으른 정신 습관이다.˝ (295쪽)

˝정욕을 억제하고 육신의 외부적 감각을 억제하는 통제력과 선행은 인간의 마음이 신에게 접근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요건이다. 정신은 당분간이나마 신체의 모든 부분과 기능에 파고들어 지배함으로써 겉보기에 천박하기 그지 없는 육체적 욕망을 순결과 헌신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294쪽)

그래 나도 그럴 수 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을 훌훌털어버리고 정말이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안빈낙도하며 살고 싶다. 소로우가 2년 2개월 2일동안 살아왔던 방식은 시골 태생인 나에게 그리 낯설지 않으니.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게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혼자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니. 수타니파타에서 부처가 설파한 대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것도 이제까지 내가 진정 원해 왔던 삶의 방식이므로.

˝숲 속에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초원을 찾아 거닐 듯, 현명한 자라면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 없이, 속임 없이, 갈망 없이, 위선 없이, 혼탁과 미혹을 태워버리고, 세상의 온갖 바램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때묻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수타니파타, ‘무소의 뿔의 경‘ 중)

하지만, 이런 모든 것도 내 몸 하나일 때 가능한 것이다. 이제와서 내가 나 하나 편하자고 내 가족들을 모두 버려야 한단 말인가. 심지어 혼자였던 소로우 자신도 그런 삶을 살다보니 외로움에 시달렸고, 그래서 그런 느낌을 애써 외면하려고 아래와 같이 말한 것은 아니었는가.

˝목장에 핀 우단현삼,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그리고 뒤영벌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밀브룩 강이나 지붕 위의 풍향계, 북극성, 남풍, 4월의 봄비, 정월의 해동, 그리고 새로 지은 집에 자리 잡은 첫 번째 거미... 이런 모든 것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181쪽)

이러한 모든 말들이 사실은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은 재력과 사회적 지위 등등의 절대적 또는 시점간 수준의 변화보다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 즉 횡단면적으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더 크게 힘들어 하는 법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은 홀로 훌훌털어버리고 산속에 숨으면 상당부분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숨는 것을 용감하다고 할 수 있으며 또 용이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누군들 다른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살고 싶지 않겠는가.

60년이나 된 사과나무 식탁에서 어느 날 알이 부화되어 벌레가 나왔다는 마지막 일화에서는 한편으로는 ‘조르바‘를 읽었을 때와 같은 두근거림이 잠시 일어나기도 했지만, 내 현실을 되돌아보고 나선 씁쓸함만 더 커졌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부화하여 나갈 때 나의 가족은 어둠의 껍질 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할 신세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의 눈에 그런 나는 카프카의 ˝변신˝에서와 같이 정말 ‘벌레‘로 느껴질테이니 말이다.

˝처음에는 푸른 생나무의 백목질 속에 알로 태어났지만 그 나무가 차츰 잘 마른 관처럼 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죽은 듯 메마른 사회생활 속에서 목질의 동심원을 이루는 나이테 속에 묻혀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일가족이 즐겁게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 밖으로 나오려고 이놈의 벌레가 갉는 소리를 냈으니 모두는 여러 번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벌레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제일 값싸고 흔한 가구 속에서 튀어나오 마침내 찬란한 여름 생활을 즐기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44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