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쟁실록 - 전쟁이 바꾼 조선, 조선이 바꾼 세계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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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저기행』, 『조선반역실록』, 『조선붕당실록』에 이어 <박영규의 주제로 읽는 조선사> 시리즈의 신간, 『조선전쟁실록』이 출간되었다. 『조선전쟁실록』은 전쟁이 바꾼 조선, 조선이 바꾼 세계라는 부제로 고려말의 왜구 토벌 전쟁이 어떻게 조선의 대마도 정벌로 이어졌는지, 조선이 여진을 어떻게 토벌했는지, 삼포왜란과 두 차례의 왜변, 일본과 조선 사이 있었던 임진왜란의 전개 과정, 여진이 조선을 침략해 벌인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개항기에 이르기 전 프랑스와 미국이 조선을 침략했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이르기까지 조선에 있었던 전쟁들을 알기 쉽게 정리해놓았다.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이지만 나 역시도 굵직굵직하게 몇 단어로만 알고 있던 지식을 이야기로 풀어 설명해주니 더욱 이해하기가 쉬웠다. 공부하면서 참고하고 싶은 해설서 같은 느낌이었다. 조선에 있었던 모든 전쟁들을 왜 일어났는지 그 발발 원인에서부터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 과정, 그리고 그 결과 어떻게 변화했는지까지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어 조선의 전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역시 신미양요 부분이었다. 저자는 "전쟁은 인간의 가장 잔혹하고 비정한 표현 방식이자 인간 문명과 지혜의 결정체다. 그런 까닭에 조선 전쟁사는 조선인들의 가장 처절한 생존 투쟁사이면서, 조선의 문명과 지혜를 확인할 수 있는 문명사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저자가 의도한 바와 내가 평소 신미양요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생각이 일치해서 인상깊었던 것 같다. 신미양요는 결과적으로 보면 패배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그 이상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흙과 돌을 던지며 낯선 이방인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우리 민족의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승리, 패배의 이원론적인 결론이 아니라 그 과정과 의의를 공부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 공부라는 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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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대니얼 크라우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온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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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어떤 곳에 담느냐에 따라 모양이 바뀔 수 있다. 『셰이프 오브 워터』 라는 제목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랑은 마치 물처럼 그 모양이 고정되어있지 않다. 세상에 존재하는 부와 권력이 오직 '정상인'-백인 남성으로 대표되는-의 것이며, 정상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감정만이 진정한 사랑으로 여겨지는 이 사회에서, 동성애자, 흑인, 여성, 장애인, 괴물. 이들은 조금 다른 사랑을 보여준다. 모양도 형태도 정상의 사랑과는 다르게 생겼지만 결국은 사랑임을, 보여준다. 
  또한 물은 모든 것이 섞여 깨끗해지는 정화의 기능을 한다. 그들이 멸시하는 '괴물'이라는 존재가 들어있는 물 속이 사실은 가난, 근친상간, 폭력이 난무한 물 바깥세상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물은 존재 자체를 그대로 비추어 보여준다. 물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존재의 실체를 또렷하게 비춘다.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서로를 끌어안아준다. 비록 물 밖에서는 차이를 차별하고 비난할지 몰라도 물 속에서만큼은 서로를 사랑해준다. 

  물이 지닌 여러 속성들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사랑을 이야기한다. 온갖 편견과 고정관념 속에서도 사랑의 위대함은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가 규정하는 정상적인 사랑 뿐 아니라 물처럼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사랑의 모양을,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같은 사랑임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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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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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상실의 시대』 등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버스데이 걸』이 출간되었다. 시험기간에 책을 받았기에 받은 즉시 읽고 싶었지만 시험이 끝나서야 읽게 되었다. 날씨 좋은 날 이렇게 학교 잔디밭에 앉아 맥주 한캔과 함께 책을 집어들었다. 

『버스데이 걸』은 스무살 생일을 맞은 한 여성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스무살 생일에 대신 일해줄 동료를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여성은 우연히 생일 선물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사장을 만난다. 원하는 것을 말하면 뭐든지 들어준다는 말에 그 여성은 무엇을 빌었을까.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여성은 부자가 되게 해달라거나, 똑똑해지게 해달라거나, 미인이 되게 해달라는, 누구나 원할 것 같은 보편적인 소원을 빌지는 않았다. 앞서 말한 세 소원이 이루어지길 원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로 자신이 어떤 식으로 변해갈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을 소원으로 빌었을까? 작가는 우리에게 그녀의 소원을 추론해보게끔 한다. 부, 미, 지성만이 욕망과 성취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지는 요즘 사회에, 이 외의 다른 어떤 소중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보게끔 한다. 어쩌면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하기 위해서, 작가는 주인공의 소원을 알려주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소원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주인공은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물질적인 형태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 그녀가 받은 진정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라드브루흐는 세상이 궁극적으로 모순이 아니고 삶이 결단이 아니라면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가라고 말했다. 결단한다는 것은 갈림길에서 자기가 나아갈 길을 스스로 판단하여 진행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갈림길에 스스로를 밀어넣고 고민하고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주인공을 결단에 이르게 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일깨워준 것이 사장이 주인공에게 준 생일 선물이 아니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남긴 작가 후기에서는, 생일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돈이 많든 없든, 누구나 모두 갖고 있고, 단 하나씩만 가질 수 있는 것. 차별로 가득찬 세상에서 유일하게 차별이 없는 아주 공평한 것이 생일이라고 말한다. 1년 365일 중 단 하루, 나에게만 특별하고 소중한 날. 오늘 하루도 누군가의 생일일 것이다. 나에게는 소중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날들을,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게 채워가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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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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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세이 류의 책을 좋아한다. 책을 통해 한 인간의 생각과 살아가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얼마 전 읽었던 한병철의 『땅의 예찬』처럼, 그리고 오늘 읽은 『문성희의 밥과 숨』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꽃과 음식으로부터 자신의 철학을, 삶을, 생각을 찾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유한한 삶을 무엇으로 채워나가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다라는 여러 삶의 방식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문성희는 '재료가 지닌 본연의 생명력을 망가뜨리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요리'라는 철학으로 다양한 자연 요리를 연구해온 요리연구가이다. 가볍고 간결한 음식의 가치를 알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삶을 잘 그리고 있는 책이 『문성희의 밥과 숨』이다. 책의 띠지에 쓰여 있는 "먹기와 숨쉬기만 잘하면 생명은 이어진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라는 말이 그녀의 인생 철학을 잘 보여주는 듯 하다. 그녀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활동인 먹기와 숨쉬기만을 생각하며 사는 삶을, '오로지 살아있음으로써 존재하고 그렇게 존재함 이외에는 더 필요할 것이 없는 삶'을 추구한다. 

  화려하고 좋은 것들을 많이 접하면서 사는 것만이 멋있는 삶이라고 여겨지지만, 나는 작고 소박하더라도 내 공간에서 나의 것들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어쩌면 더 멋진 삶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저 흘러가게 놔둘 수 있는 일상에 관심을 기울이면 그 속에서 또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밥을 먹는다는 일상적인 행위가 저자에게는 온 정성을 다하는 행위이며, 그 속에서 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는 행위인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너무 많은 관계를 맺으면
점점 복잡해지고 할 일이 많아져서 가볍고 단순한 생존이 주는 희열을 잃어버린다. 
먹는 것이 단순해지면 사는 것도 단순해지고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질수록 생의 찬미도 쉬워지고 삶의 이해도 깊어진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늘도 나의 숨결을 헤아리고 한 그릇의 밥을 먹는 것으로 살아간다." 밥을 먹고, 잘 숨쉬기만 하면 생명은 이어진다. 많은 것을 가지려 애썼던 나에게 그저 잘 먹고 잘 숨 쉬는 존재라는 이유만으로도 너는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자꾸만 욕심이 생길 때, 이렇게 되뇌어야겠다. 나는 오늘도 나의 숨결을 헤아리고 한 그릇의 밥을 먹는 것으로 살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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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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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주인공이 고향에서 농작물을 직접 키워 음식을 지어 먹으며 계절을 지낸다. 예능 <효리네 민박>에서는 제주도에 내려가 살며 여유로운 날들을 보낸다. 이제는 '자연'스러움의 콘텐츠들이 미디어 속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병철의 저서 『땅의 예찬』도 3년간 자연으로 돌아가 정원을 가꾸었던 한 철학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마 전 등산을 하며 산을 오른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고 느꼈다. 숨이 턱까지 차서 포기하고 싶을 때, 바로 그 때 정상이 눈 앞에 보인다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힘들지만, 묵묵히 같은 속도로 걷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잘 내려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우리들이 찾는 인생의 진리는 사실 자연을 잘 살펴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한병철도 생명을 품고 있는 땅을 바라보며 인생을 생각한다. 
 
   정원에서의 3년동안 그는 늘 할 일에 치여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인생에서 벗어나 시간이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기계와 인터넷의 발달으로 노동과정에서 드는 절대적인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시간에 쫓겨 산다. 하지만 자연에서의 시간은 느리게만 흘러간다. 다음 봄까지의 시간이, 여름 동안의 시간이, 다음 가을 단풍까지의 시간이, 겨울의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늘어난 시간과 여유는 타자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정원에서 일하면서 그는 이기적 자아에서 벗어나 오로지 꽃을 향해 관심을 갖고, 걱정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정원은 존재와 시간을 준다'고 말한다.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싶었던 한병철은 겨울을 이겨내는 꽃들을 자신의 정원에 심는다. 그래서 그의 정원에는 사계절 내내 다른 꽃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는 겨울을 이겨내고 생명을 품는 꽃들에 감탄하고, 밝지는 않지만 편안함을 주는 푸른색 꽃을 사랑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게 피어나서 제 자리를 빛내는 꽃을 바라볼 줄 안다. 그는 어떠한 꽃이라도 그 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꼭 밝지 않아도, 예쁘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저마다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그의 말들에서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느낀 것들을 담담히 풀어놓은 책, 『땅의 예찬』. 자연이 선사해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오늘은, 아파트 단지에 핀 꽃들과 나무와 풀을 자세히 바라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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