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아메리카 생존기 ㅣ 스피리투스 청소년문학 1
박생강 지음 / 스피리투스 / 2022년 3월
평점 :
어른보다 아이들이 외국에 가면 낯선 환경에 더 잘 적응해요. 여행이 아닌 이민이라면 다를 수 있겠지요 태조가 온몸으로 부딪히는 미국 생존기 기대되었어요

본격적으로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이 책의 주인공 태조의 실존모델이 되어준 재미교포 M군의 소개글이 있어요. 작가님에게 자신이 겪었던 이민 생활을 짧게 이야기하며 태조처럼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나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해요. 태조는 그런 M군의 솔직함과 긍정적인 태도가 더해져 생생한 존재감에 멋짐을 과시합니다.
태조는 중학교 때는 학교짱에게 찍혀 괴롭힘 당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에 조선, 고려, 삼국시대 왕 이름을 모두 외울 정도로 역사를 무척 좋아하는 점을 알아주는 역사 선생님이 있었지만 역사 공부를 더 할 여유도 없이 이민을 가야했어요.
시골 출신 엄마가 이태원에서 돈을 번 후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과감히 미국 이민을 택한 거였죠. 다니게 될 학교를 방문한 날, 태조는 "한국 남자애 땀내 나"라고 말하는 한국 여자애와 마주쳐요.
나는 그 여자애에게서 나와 비슷한 재질을 느꼈다. 세상 사람들을 스스로 따돌리려는 재질의 인간형.
나는 여자애가 사라지고 홀로 쪼그리고 앉아 정원의 연못을 바라보았다. 초록빛이 도는 연못 물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설었다. p. 54

이곳 오렌지에서 한국 유학생은 냉면과 라면으로 나뉩니다. 라면은 오렌지 본토 애들보다 더 화려하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그들만의 친목을 만들어요.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잘 어울리고 노는 걸 즐기는 애들이에요. 냉면은 미국 생활에는 관심없고 오로지 좋은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에만 파고들며 외국인이나 라면과 어울리지 않아요. 태조가 처음 만난 여자애 민희는 냉면이구요.
태조는 누구와도 가까이 어울리지 않고 영어를 못해 퀭한 눈으로 학교 안을 좀비처럼 다니며 매일 바이오하자드 팬픽을 썼어요. 누나 태리는 그에게 한국에서 온 바보라고 소문났다고 해요.
나는 사람들의 집단이 이상한 걸 알고 있었다. 뭔가 집단에서 어색한 사람들을 귀신 같이 꿰뚫어 본다.
한국에서 나는 소외된 의자였지만 미국에 왔더니 나는 놀림감 의자로 변해 버렸다. 이건 더 끔찍한 상황이었다. p.79

태조는 농구를 통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을 바꿔가요. 자신을 걱정하는 태리가 막막함을 감추고 미국에 온 한국애들과 어울리며 무서운 걸 달랜다는 걸 알게됩니다. 그는 태리에게 큰 소리로 말해요.
"걱정하지 마. 이제 나보고 바보라고 하는 한국 애들 없을 거야. 친해지면 끝이니까!" p.87

태조는 미국 친구들과 어울리고 신입 유학생들의 반장처럼 보모 역할도 맡으면서 AMERICA'S SURVIVAL라는 제목의 일기를 채워가요. 조승희의 버지니아 총격 사건 여파로 계란 세례를 맞기도 하고 한국에서 친했던 친구들과 연락도 하고 무한도전도 다운받아 보면서 고군분투해요.
이 책의 결말에는 시간을 건너뛰어 2021년 핼러윈 이태원이 나와요. 태조는 미국에서 사는 즐거움을 발견해 그곳에서 살기를 택한 태리와 달리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말이 떠올라요. 성장 소설에 팩션같기도 했어요.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지만 평범하지만 다른 태조의 미국 적응기가 재밌고도 짠하게 느껴지네요.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