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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김병종 지음 / 너와숲 / 2022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죽어도 좋을만큼 행복한 절정감을 느낀 적 있다면 그 자체로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숨막히게 가슴 벅찬 순간들을 겪었다는 화가의 풍경 이야기를 기대했습니다.

저자는 열다섯 살 무렵 처음 시골 역 앞 다방에서 전시를 열었고 시를 썼다고 해요. 사십여 년간 미대에서 가르치고 세계 곳곳의 비엔날레에 참여하였어요. 그에게는 그림이 밥, 글이 반찬이라고 합니다.
작은 여객선을 타고 세례 요한이 요한 계시록을 썼다고 전하는 파트모스 섬을 찾아가던 에게해에서 옥색과 청회색, 은색, 그 위에 보석 가루를 뿌린 듯한 바다를 보며 불현듯 '여기서라면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고 해요.
사는 일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라면 죽음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고 사는 일이 눈물겹더라도 죽음만은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표현이 지극히 낭만적이에요.
이어령 선생의 부고를 접하고 자신도 그처럼 창밖에 푸르고 청정한 소나무가 있는 나의 집에서 가족들이 둘러선 속에서 일상의 한 자락처럼 죽음의 폐이지로 넘어가고 싶다고 합니다.
왜 그 모든 아름다움의 한가운데 고여 있는 마알간 슬픔이 보이는 걸까.
왜 모든 아름다움은 곧 지고 말 것 같은 떨림을 주는 걸까.p.25

사막은 평범한 사람이 여행지로 선택하기 어려운 장소입니다. 특히 사하라 사막은 너무 멀어 비용도 많이 들지요. 저자는 그곳에서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썼을 듯한 사막의 밤을 경험했습니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만나면 고요와 적막은 순식간에 광풍에 휘말립니다.누구라도 예측불허의 모래바람을 피하는데 길 안내를 해주었던 한국 여인은 한 번씩 이 거친 사막의 모래바람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예측불허의 모래바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사막여행에서 남들은 모르는 치유와 회복, 삶에 대한 열망을 안고 돌아오기 위해서요. p.73

팬데믹 직전 로마에 있었던 저자는 로마 신전의 긴 회랑을 걸으며 권력자들은 자신이 덧없이 지고말 생명이기에 무자비한 시간에 맞서 오래 남겨질 것에 집착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합니다.건축가, 화가, 조각가의 손을 빌려 자신의 육체보다 오래 갈 무엇을 남기는 것.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기를 소망하던 교황들마저 땅 위에 먼저 그 이름을 새기고 싶어했으리라.
저자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막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같은 오드리 헵번이 만년에는 마른 넝쿨처럼 쇠약해진 육신으로 삶의 무게를 겨우 지탱하듯 보이다 예순넷의 나이에 지고 말았다는 걸 떠올립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고 지상의 아름다움 가운데 불멸은 없다. p.91

이 책은 화보집처럼 많은 그림이 담고 있어요. 풍경화, 추상화 등 다양한 색채와 표현이 글과 잘 어우러집니다. 이렇게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운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글과 그림을 보며 사색하는 책이에요.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