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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저벨
듀나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 대표 sf작가 듀나님이 바이러스와 관련한 이야기를 전개하신다니 아직 현재진행형의 전염병이 연관되어 더 기대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 나왔던 외계 침략자 아자니들이 언급되네요. 아자니들이 유형지 행성 크루소에 빨판상어들을 떨구고 빨판상어의 잔해 속에서 곰인형처럼 생긴 생명체가 발견됩니다. 인간으로 보기 힘든 외모의 생명체는 부유한 노부인에게 입양되었고 말하는 곰인형이 아닌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수학, 물리학 등 학문을 공부했어요.
노부인이 세상을 뜨고 그녀의 친척들에 의해 그는 해적선에 팔리고 로즈 셀라비 호에서 갖은 멸시를 견디며 배에 대한 지식을 익혀요. 그는 로즈 셀라비의 시티로서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을 걸 알고 탈출 후에 제저벨 호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크로소 사람들에겐 목숨을 걸어야 할 사상이나 신념 따위는 없었어. 그렇다고 전쟁을 일으켜야만 살아남을 만큼 빈궁한 시티도 없었고. 선장이 보기에 크루소 사람들은 순전히 습관 때문에 전쟁을 했어. p.31

오로지 놀이만을 하는 자들에게 놀이는 놀이일 수만은 없다. 그것은 삶이다. 역사이다. 우주다.
어느 순간부터 삶의 진지함이 놀이의 가벼움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p.86

토요일이라는 대륙에선 은하계의 밀리터리광들이 모여 제2차 세계대전을 재현합니다. 처음에는 인공지능과 무선 조종으로 움직이는 가짜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자신들이 속한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지더니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 좁아지자 진짜 독일군과 소련군이 되어 서로를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크루소에선 인종차별이 무의미해 1미터짜리 곰인형도 2미터짜리 고양이 인간도 살 수 있고 양성의 경계가 붕괴되어 성차별도 없어요. 어떤 편견과 차별도 길어야 한 세대를 넘지 못했구요. 예외는 베들레헴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평범한 인간과는 전혀 다른 정신 구조를 갖고 있고 링커 바이러스를 통해 번져갈 것을 염려한 자들에게 살해당합니다.
종교적 믿음을 숙주에게 강요하는 세뇌 벌레인 말씀의 벌레가 링커 바이러스 속에서 변화하여 유전자 안에 넣은 말씀은 파괴되고 변형되었어요. 변형된 말씀은 폭력적이고 이해불가한 것이 되었구요.
어떤 문장이건 주어는 존재할 수 없었는데 그건 유일신 외엔 다른 주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시민의 80퍼센트가 숙주였습니다. 나머지 20퍼센트를 가려내는 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린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2주 안에 말이죠.p.173

링커 우주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의 원형을 온전히 유지하는 경우가 거의 드물어요. 현재와 같은 차별이 없어져도 여전히 인간들은 서로 차별할 이유를 만듭니다. 종교적 신념이 바이러스와 기생충이 일으킨 정신병으로 묘사되네요. 교회 마피아라는 표현도 나오구요. 종교를 미래 배경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비판한 걸로 보여요.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만이 모인 우주선이 안드로메다 은하계로 날아가는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주라는 배경에서 상상력은 무한대지만 현실에 뿌리를 두니 더 공감할 수 있어요. 한 편의 장편이지만 여러 에피소드가 모인듯한 기분이 드는 링커 우주였어요.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