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 신진 작가 9인의 SF 단편 앤솔러지 네오픽션 ON시리즈 1
신조하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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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을 위한 반려로봇이 있다고 들었어요.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의존이 증가하는 인간의 생활을 그려낸 SF소설집으로 기대했습니다.



'인간의 대리인'은 현직 변호사가 쓴 미래 변호사 이야기예요. 주인공은 무뇌아로 태어나 인공 두개골과 함께 투명 뇌를 이식받아 변호사가 되었어요. 참고로 인공지능 판사가 판결하는 시대입니다. 

변호사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임상실험 부작용으로 백여 명의 사람들이 뇌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하여 좀비처럼 사람을 물고 공격한 일명 좀비 사건을 맡게 됩니다. 그는 약의 악용가능성을 상기시키고 피해자들이 죽음을 선택했다고 말했지만 피해자 모두가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자신의 상황을 피해자들의 현실에 투영해 보는 그의 복잡한 생각이 드러나요. 이 캐릭터의 여러 에피소드를 모은 장편으로 만들면 좋겠어요.   

"왜 위험을 알면서도 이 말도 안 되는 서류에 서명을 했냐고요? 이들은 인간으로서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사로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면 죽음까지 감수하겠다는 선택을요!
본인의 자아을 상실하더라도 연명을 원하는 사람들이었다면 과연 이런 무모한 실험에 참가했을까요? 

인간의 존엄을 위해 이 모든 발전을 이루어낸 문명이 인간의 기본권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저 호흡을 연장시키는 것이 법이 인간에게 베푸는 은혜라고 착각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p. 35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는 사람의 역할이 분명하게 요구되는 일에 대해 말해요. 여자는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고객인 척 어슬렁거리는 일, 교통 사고 가해자의 친척인 양 피해자 가족 앞에서 무릎 꿇어 울면서 몇 시간 동안 합의를 구걸하는 일 등을 했어요.새로운 일감은 내연남과 밀회를 나누던 유부녀가 이별을 통보해 달라는 거였어요. 

직접 만나서 말할 자신은 없고 통화나 문자메시지로 처리하기엔 너무 큰 문제라 자신의 친척이나 직장 후배 정도로 신분을 속여서 일을 처리해달라는 요청이죠. 너무 냉정하게 전달하면 악감정을 품고 엉뚱한 일을 벌일까 우려되니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단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느껴지게 해달라는 조건이 있구요. p. 149


그 자리에서 여자는 자신처럼 알바로 온 남자와 만나게 되지요. 둘은 감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감정 대리업 종사자의 경험을 입력하는 걸로 취업합니다.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AI가 인간보다 더 잘 연기하고 연주하는 세상에서 둘의 감정은 메마르고 결국 이혼하게 됩니다.

'도덕을 도매가에 팝니다'는 도덕법이 존재하는 세상을 그려요. 택배 배달부 정수는 범죄자들이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호흡이 빨라졌다는 이유만으로 호흡까지 통제당하는 걸 불만으로 여깁니다. 한숨 쉬는 버릇을 고치고 싶지만 쉽지 않았어요. p.180


그는 갑자기 도덕 3 버전 이하는 해고한다는 방침때문에 직장을 잃어요. 도덕 버전이 낮은 사람은 도덕법을 위반한다는 이유에서죠. 정수는 도덕을 훔치러 어떤 집에 침입하고 마침 들이닥친 양아치들때문에 집에 불이 붙자 집주인을 구해 나오고 말아요. 그는 도덕적인 시민으로 표창장과 상금을 받고 도덕법을 어긴 죄인들이 불타는 장면을 웃으며 봅니다.

이 책의 9편 소설에는 SF본연의 과학적 의견이 현실감있게 담겨 있어요. 사람의 머릿속 생각을 전달하는 기계, 인공자궁, 친권자가 없는 아이들을 위한 휴머노이드 후견인 등 내용은 인간의 삶에 가깝구요. 미래에 정말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어요. 과학은 순식간에 발전하는데 인간의 감정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비슷해서 대조적이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내용으로 재밌게 읽었습니다.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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