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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고 싶어서
이훈길 지음 / 꽃길 / 2022년 2월
평점 :
어느 나라나 랜드마크라 할 만한 건축물이 있어요. 사는 지역에서도 익숙한 곳에서 새로움을 찾기도 해요. 도시공학박사이자 건축사가 말하는 거리의 독특한 건축물 이야기를 기대했습니다.

이 책에는 풀컬러 사진이 가득해요. 멀리 떨어진 곳보다 친숙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새롭게 조명된 건물들을 발견하게 되네요.
소설가 이상의 집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건축가이기도 했던 이상의 집이 있던 집터일 뿐이지만요. 3살 부터 23살까지 20년 동안 살았던 집터라고 해요. 통인동 본가는 서촌에서 큰 한옥으로 본채와 행랑채, 사랑채가 있던 300여 평의 넓은 집으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의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은 여러 개의 필지로 나뉘어 도로에 편입된 일부를 제외한 10여 개의 필지에 도시형 한옥이 지어졌어요.
이상의 집은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후대에 남길 첫 보전재산으로 매입해 개보수를 거쳐 2014년 3월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5명의 건축가가 고심하여 원형 그대로의 기와와 대들보를 살려 리노베이션 했어요.
문을 여는 순간 밝게 비치던 햇빛은 사라지고 짙은 어둠이 계단을 타고 들어온다. 이상과 만나는 짧은 순간이면서 긴 지하통로로 올라가는 느낌이다. 2층 발코니에 서면 현실의 세계와 마주한다. 삶과 죽음이 찰나에 겹쳐지는 순간 같다. p.30

강남은 세련되지만 차가운 느낌이 있고 종로는 오래되고 친숙한 느낌이 있어요. 종로타워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백화점니 있던 자리에 세워졌어요. 주변의 딱딱한 박스 형태 건물과 달리 철골과 유리를 사용하여 1999년 당시로서는 최고의 하이테크 건축물이었답니다. 우루과이 출신 건축가의 종로타워 평면을 보면 화신백화점과 놀랍도록 유사하다고 해요. p.115

이 책에는 큰 건물뿐만 아니라 주택가의 빌라도 소개되어 있어요. 고 차운기 건축가가 제자인 원희연 건축가와 함께 설계한 12주라는 건물입니다.
골목에는 그 동네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사연과 아픔이 녹아 있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걷다 보면 이제는 다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던 추억과 순수함이 남아있음에 놀란다. 너무나 평범한 골목길 사이에 12주 건물이 있다.p.223

12주는 원래 있던 한옥을 허물 때 나온 주춧돌 12개를 1층에 가져다 놓고 지은 건물이라는 뜻이에요. 쓰다 남은 각종 자재를 활용하고 1층 주차장 주출입구에는 철판을 갑옷처럼 겹쳐 굴곡을 표현하는 등 설계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건물입니다.
건물을 찍은 사진과 수려한 문장의 에세이가 함께해서 새로운 지식과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우리 주위에 이렇게 의미있는 건축물이 많았구나 새삼 느끼게 되네요. 골목길도 익숙한 거리의 건물들도 시간나면 찬찬히 살펴보고 싶게 만드는 내용이에요.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