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채널 투니버스가 처음 생겼을 때 신기했어요. 원 없이 만화를 볼 수 있다니 좋았죠.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는 1990년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흥미로운 작품집으로 기대했습니다.

표제작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에 나오는 애니메이션 제목만 봐도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만경과 수진은 동갑이고 둘의 형과 오빠는 절친이라 자주 어울렸어요. 형과 오빠는 486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만경과 수진은 TV를 시청했어요. 만경과 수진은 서로 친하지 않았죠.
둘은 서로 관여하지 않고 같은 공간에 존재하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학교에서도 말을 섞지 않았다. 그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선 만경은 주먹밥이었다
주먹밥은 그곳에 낄 수 없었던 거예요. <후르츠 바스켓>P.13

어두운 타입인 만경은 슬램덩크의 강백호 같은 수진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폭력적이다 싶을 정도로 감정 표현이 솔직하지만 밉지 않고 매력적이고 사과하고 반성하며 성장하는, 자기 삶을 사는 그런 붉게 타오르는 사람. 만경은 수진처럼 되고 싶고 우울함이 들 때면 만화를 그렸어요.
셜록과 왓슨처럼 붙어다니던 수진과 만경의 사이에 수진의 친구 지수가 나타납니다. 지수는 카드캡터 체리의 지수와 판박이였어요. 만경은 첫눈에 반해버려요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난생처음 봤다 <허니와 클로버>
이즈음부터 만경에게 괄목할 만한 변화가 생겼다 느릿하고 목소리가 작았지만 만경이 먼저 말을 꺼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듯 만경은 지수가 알아듣지 못할 화제를 장황하게 늘어놓아 분위기를 어색함의 구렁텅이로 떠밀었지만 지수는 만경이 민망해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P.31

저자는 아마도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어린시절을 투니버스와 함께 했나 봅니다. 무수한 애니메이션 제목과 그 안에서 찾아낸 명대사는 상당히 마니아적 내공이 느껴지네요. 내용 자체가 코믹한 청춘 만화 같아요.
코인노래방에서는 동성연인에게 털어놓는 첫사랑 이야기에요. 버즈, 소녀시대, 카라 등 예전에 인기였던 가수와 노래들이 나오네요. 여친, 남친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친했던 친구 정우와 코인노래방에서 실수처럼 입술이 닿고 이후 학교에 둘이 진짜 사귄다는 소문이 돌아요.
"있잖아. 나는 너한테 어떤 사람이야?"
즉답을 하고 싶었지만 말문이 막혔다. 연인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던 적은 없었다. 하마터면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되물을 뻔했다.
"네가 스스로 비참한 사람이라고 실컷 고백하고 나면 그런 너를 좋아하는 나는 뭐가 되는 걸까."
원망인지 위로인지 알 수 없는 연인의 말을 듣다가 어쩐지 슬퍼졌다.P.73

추억은 보글보글은 게임이 소재인 이야기예요. 만화, 노래방, 게임이라니 레트로 감성을 제대로 자극하네요. 향수를 느끼고 즐겁다가 사색도 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