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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문장에 혼을 담았다.

마루야마 겐지는 작품의 문장을 무척 고심해서 정제한 기분이 들어요. 감각적인 젊은 작가의 문장들도 좋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그의 문장이 담긴 작품도 좋습니다. 그의 대표작이라는 [달에 울다]라니 기대되었습니다.
열 살의 소년은 자신의 아버지가 친구인 야에코의 부친을 죽인 걸 알게됩니다. 어린 소년은 어른이 되면 마을을 떠나 야에코와 백구만 살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스무 살이 되어 그는 야에코와 연인이 되고 부모는 그에게 의존해요. 야에코의 부친을 죽인 원수의 아들이기에 둘이 이뤄지기란 불가능합니다.
나는 지금 분명히 행복하다. 1년 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날들이다.
언젠가는 사과나무 아래 묻히는 일생을 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에게는 야에코가 있다.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자는 아버지라도 용서하지 않으리라.
야에코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작정이다. P.57

서른의 그는 결혼할 뻔한 여자가 있었지만 파기하고 여전히 부모와 살고 있어요. 야에코와의 관계는 7년 전에 끝났습니다. 그는 야에코에게 첫 남자에 지나지 않았고 그녀의 네 번째 사내까지 알고 이후로는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아도 밤에 잠 못 이룰 정도로 화가 나지도 않았어요.
나는 이제 끝장이다.
내 모든 것이 종말로 치닫고 있다. 이미 아주 오래 몇백 년이나 산 것 같다. 아직 가정을 가진적조차 없으면서 모든 일을 완수한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오늘 야에코는 마을을 떠났다 P.88

겨울에는 모든 나무가 물을 거부하고 잠들어 있다. 지금 마을 아래를 흐르는 물은 몹시 차다. 때에 따라서 사과나무도 죽이는 물이다. 마을 사람들은 날마다 그 물을 실컷 마시면서도 살아있는 척하고 있다.
나는 눈사람처럼 눈에 덮여 걷고 있다. P. 107

마흔이 된 그의 앞에 죽은 야에코가 발견됩니다. 부모도 백구도 야에코도 죽고 그에에 의미가 불분명한 말을 하던 법사도 세상을 떠나요. '달에 울다'는 조용히 사색하게 만드는 이야기예요.
이 책에는 '조롱을 높이 매달고'가 책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쫓기고 직장을 잃고 의사에게서 머리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 개까지 죽고 30년 전에 살았던 마을로 돌아온 남자의 이야기로 '달에 울다'보다는 문장이 길어 읽기 편하고 다른 설정이에요.
설명이 부족하여 줄거리를 파악하기 쉽지 않아 여러번 꼼꼼히 읽었어요. 번역이 뛰어나서인지 원래 문장의 느낌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20세기 초반 작가들의 작품과 비슷한 기분이 들어요. 건조한 듯 하지만 감정을 흔드는 문장입니다.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