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중증 질병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치매는 사회적 도움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가족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까지 있으니까요. [아빠의 아빠가 됐다]는 치매 걸린 아버지를 홀로 돌본 9년을 기록한 내용이라니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야기를 기대했습니다.
저자는 영화감독, 댄서, 작가를 꿈꾸던 스무 살에 부친이 쓰러져 알코올성 치매 초기진단을 받습니다. 치매환자는 거의 24시간 보호가 필요한 중증 환자입니다. 가족이 간병에 나선다해도 생계의 위협까지 받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어요. 저자도 그러한 경우에 해당되었습니다.
아빠가 쓰러지신 후 구청에서 지원하는 긴급 복지 지원은 실비 보험에 가입한 경우엔 받을 수 없었답니다. 기초 생활 수급자가 되기위한 위장 이혼이 많아 이혼한 엄마의 수입까지 확인했다고 해요. 엄마가 이혼한 아빠 앞으로 실비 보험을 들어놓은 것이 금전적 거래에 해당되어 의심을 받았습니다.
불쌍한 존재가 돼야 하고 불쌍한데 착해야 하고 그래서 지원이 더 의미 있어야 한다. 내 삶 전체를 가난으로 설명하고 그 삶을 심사받아야 한다. p.41

아빠는 저혈당에 급성 심근 경색까지 있는데도 술을 끊지 못했고 길 잃고 헤매거나 쓰러져 저자를 아찔하게 했습니다. 저자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망망대해를 호랑이와 함께 헤매면서 살아남은 파이에게 동질감을 느낍니다.
공장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릴까 두려웠다. 아빠를 보호하는 일은 버거운 과제였지만 아빠를 보호할 때만 나는 인간의 지위를 얻었다. p.74

"너 흙수저잖아? 어디서 누가 받아주겠니?"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싶다고 할 때 이런 말을 한 공장 아저씨들이 떠올랐다 그런 반응을 시민단체 들어와서도 겪었다.
어떤 특정한 사람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모든 기성세대의 특성일까. 나눔이니 공생이니 하면서 좋은 가치에 기생해 삶을 유지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으면서 자기 혼자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자리에 오르는 현실에 환멸을 느꼈다.
흙수저가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모습을 우습게 생각하는 어른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기를 바랐다. p. 100-101

저자는 공사현장에 나가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기도 하면서 정말 열심히 힘들게 지냈습니다. 부친과 주소를 옮기고 질병 코드까지 맞아야 받을 수 있는 복지지원을 받으려 했습니다. 치매 검사를 할 때마다 부친은 온 힘을 다해 문제를 맞췄고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부친의 근로능력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진단명을 두고 애태웠고 3년 동안 복용한 당뇨약으로 만성 질환자라고 인정받았답니다.

20-34세 청년의 62%가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령화 진행으로 인한 치매 환자의 증가와 가족의 위기는 더 심해지게 마련입니다. 부친이 기초 생활 수급자가 되지 않았다면 병원에 들어가 생계 급여로 살아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는 사실이 답답합니다.
이 책에는 지금까지 몰랐던 복지 사각지대에 대해 알려줍니다. 갑자기 성인지 예산이 31조라던 뉴스가 떠올라 쓴웃음이 나네요. 국가의 재정과 복지에 배정되는 예산은 한정되어 있어요. 치매 환자와 간병하는 가족까지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걸 알고나니 도움이 더 절실히 필요한 위급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함께 방법을 찾고 치매와 같이 간병인이 꼭 필요한 중증 환자는 국가적, 사회적으로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