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나 드라마에서 표현된 인물을 실제 인물 자체로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김원봉, 김구를 비롯하여 무력으로 저항한 의열단이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내용이 기대되었습니다.
의열단이 세워진 배경에는 두 가지 큰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하나는 1919년 3.1 만세시위 이후 독립 열기가 불길처럼 번졌던
것, 다른 하나는 1911년 우당 이회영 일가와 석주 이상용 일가 등이 전 재산을 정리하여 북만주에 세운 신흥무관학교입니다. p.35

의열단은 공양 10조, 마땅히 죽여야 할 일곱 대상인 7가살, 다섯 가지 파괴 대상인 5파괴를 채택합니다. 훗날 정당 창당에 대비한
주요 정책을 위한 20개조 강령도 제정합니다.
의열단의 인장에는 양의 형태가 그려져있다. 의열단의 義의 글자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양羊과 아我로 구성되어 한편으로는 희생이라는 의미도 포함시킨 것으로 김대지의 고안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p.54
박재혁은 일본인 경찰 서장에게 폭탄을 던졌고 이후 체포되어 감옥에서 물과 식사를 거부하고 단식 9일 만에 최후를 마쳤습니다. 그가
쓴 격언이 그의 인격을 엿보게 합니다.
대장부 의기는 서로 믿음에 있으니 작은 거리낌도 끼어들 수 없다.
세상인심은
굳고 단단함을 좋아하나 색깔구름은 쉬 흩어지고 유리는 쉬 부서진다.p.67

후에 합류한 신채호는 의열단선언을 써서 널리 전달하게 됩니다.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라는 문장을 비롯, 격렬한 어조로
강하게 뜻을 표합니다. 의열단은 중국항일단체, 일본내 반일단체와도 연계하여 활동하였고 이후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게 됩니다.
조선의열단은 식민지 시대 일제와 친일파들이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단체였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리면 셈해지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p.307

이 책에서는 의열단원들의 이력을 사진과 함께 소개합니다. 박열, 이육사, 김상옥 등 많은 의열단원의 일을 알 수 있어요. 김원봉,
음악가 정율성처럼 북으로 간 단원들도 있습니다.
13명으로 창단하여 한때 1000여 명에 이르렀지만 1924년까지 300명에 가까운 의열단원들이 살해되었고 별 성과없이 희생만 늘어
단원들의 사기는 저하되었다고 합니다. 남아 있던 단원 태반은 공산주의자와 합류했고 이후 1925년에서 1927년 사이에 거의 전부가 중국 공산당
혁명을 위해 싸우다 죽었다고 합니다. 의열단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이었어요.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