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 아니라 수인 번호로 기억된 시인의 일생을 소설로 정리한 내용이라니 현실을 바탕으로 드라마틱한 삶의 이야기가 기대되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칠남매의 장녀로 혼자 서점을 꾸려나가는 여인입니다. 문학에 뜻이 있지만 조심스러운 성격이에요.
그는 사십 평생 열일곱 번 붙잡히고 갇혔다.
태어나면서 운명처럼 주어진
이름과 달리 필명이나 호에는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성을 담아내게 된다. 그러한 이름을 수인 번호로 지을 생각을 하면서 그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퇴계 이황의 후손, 태어나 한학을 배우고 동경과 북경을 유학하고 의열단이 세운 남경 군관학교에서 총을 들었던
남자.
그의 시선은 언제나 세상을 향해 있었고 손가락은 어김없이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P.9

이육사는 같은 음의 여러 한자로 이름을 바꿔 사용했고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죽일 육戮, 고기 육肉, 땅 육陸 등
자조적인 의미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이활李活과 육사陸史와 이육사李陸史를 섞어 쓰던 그의 필명은 그해 봄부터 이육사로
통일되어 그의 생명이 땅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치욕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 했고 또한 그 비통한 역사의 전복을 꿈꾸었던 그의 의지도
함께 땅으로 돌아갔다.p.40

이야기의 중간에는 육사의 딸 옥비가 말하는 이야기도 짧게 나옵니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라는 표현이 강렬한 시
'절정'은 1940년 1월에 발표되었어요. 이후로 그의 시는 단단한 저항성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미 수십년 간 식민지배 치하였던 상태라
저항도 무기력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 태평양 전쟁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어요.p.82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룬 연인기는 그의 문장이 시간을 뛰어넘는 힘이 있음을 느끼게합니다. 퇴계의 후손 답게 글과 서화를 공부한 것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나 세월은 12세의 소년으로 하여금 그 인재에 대한 연연한 마음을 팽개치게
하였으니 내가 배우던 중용 대학은 물리니 화학이니 하는 것으로 바뀌고 하는 동안 그야말로 살풍경의 10년이 지나갔었다.
p.110

주인공이 여인이 양반과 선비를 비판할 때 문인집안에서 자란 육사가 의를 숭상하는 유교의 정신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정쟁과 당파싸움으로 매도되었지만 선비정신을 가진 퇴계의 묘역이 있는 지역은 항일운동의 효시인 갑오의병이 일어났고 경술국치를
전후해 가장 많은 자결순국자가 나왔으며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가 배출되었다고도 합니다.
그가 감옥에서 썼던 시가 '꽃'과 '광야'입니다. 그의 죽음이 묘사된 부분은 안타까웠고 슬펐습니다.
저자는 이육사의
시, 수필 등 작품을 함께 소개합니다. 자연스럽게 글의 흐름속에 삽입되어 내용과 잘 어울립니다. 저자가 이육사에 대해 가진 동경, 애정이 그를
만났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으로 잘 표현되었어요.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