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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제발트 한권읽기.

작가들의 작가라는 명성을 지녔고 노벨수상자로 거론되었던 작가의 작품이라니 아직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걸작을 만나볼 기회로 기대되었습니다.
실제로 내가 침대에 누워 볼 수 있던 세상이라고는 창틀 안에 갇힌 무채색의 하늘조각이 전부였다.p.11

바깥에는 빛과 어둠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해변이 뻗어 있었는데 허공에서도 땅에서도 물 위에서도 어떠한 미동조차 찾을 수 없었다. 만 안에서 눈처럼 하얗게 부풀어오르는 파도조차도 정지해 있는 것 같았다.p.58


밤이, 모든 인간적인 것과는 다른 이방인인 놀라운 밤이 산꼭대기 위로 애절하고 어슴푸레하게 지나간다. p.203

때때로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p.259

각 장마다 학대당하는 노예들의 실상을 알렸다가 괴로움을 겪었던 케이스먼트, 중국의 서태후, 환상의 동물들,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피츠제럴드, 누에나방과 양잠업 등 과거의 역사, 사건, 인물을 비롯해 많은 소재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각 장끼리는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각 장 안에서는 여러가지를 물 흐르는 듯한 전개로 연결되게 해요. 목차에는 각 장의 내용을 자세히 풀어 순서대로 정리해 두어 읽는데 도움이 되네요.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양한 지식을 소개하는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40페이지에 비해 안에 담긴 내용은 그 배는 되고도 남을 정도로 분량이 많아요. 상당히 뛰어난 문체와 논리적인 구성으로 엄청나게 많은 소재를 다루고 있어요.
그런데 이 글은 소설입니다. 이 책에 실린 내용 중에는 가상의 인물과 사건이 뒤섞여 있어요. 뭐가 진실이고 아닌지 구별되지 않아요.
긴 문장임에도 늘어지지 않게 잘 계산된 듯한 느낌입니다. 번역에 무척 신경을 쓰셔서 일부 문장은 원문을 함께 실어 확인해볼 수 있게 했어요. 원문의 표현이 시적이라 번역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잘 해내신걸로 보여요.
가끔 문장이 뛰어난 작품에서 고전적인 분위기를 느끼곤 하는데 제발트의 이 작품도 그렇습니다. 사용된 어휘가 많고 현대 소설에서 잘 쓰지않는 표현이 많은 것도 특징이고요.
제발트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만약 작가가 생존해 있다면 노벨문학상을 언젠가는 수상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남기네요.
*이 리뷰는 출판사 자체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