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상 수상작가분들은 우리나라 문학의 중심을 세우시는 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여러 문학상 중에 이효석 문학상처럼 시대를 뛰어넘는 작가의 이름을 단 문학상은 수상 작품의 수준이 높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 등단을 하신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엄선하여 선정되었기에 더 신뢰가 가고요.
올해로 19회째를 맞는 이효석문학상에서도 여러 유명 작가분들의 치열한 경쟁이 있었군요. 국내 최고의 단편들을 묶은 작품집이고 최근에 읽었던 '몫'을 쓰신 최은영 작가님도 있어서 더욱 기대되었습니다.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 작가님의 [모르는 영역]은 이혼한 후 딸과도 어색해진 그의 이야기입니다. 딸인 다영의 말투가 ~다나까 여서 처음엔 읽으면서 내용 파악이 잘 되지 않았어요. 여주에서 도자기 비엔날레를 하는 다영을 만나 그녀의 팀원들과 식사를 한 후, 식당에서 식사대금 문제로 실랑이 합니다. 다영은 식당 주인에게 순순히 계산을 해준 그에게 소리를 질러요. 부녀는 어색하게 행동하다 그가 떠나기 전 평범한 부녀처럼 대화하고 끝이 납니다.

왜 아침달 낮달 저녁달이 아니고 모두 낮달인가 생각하다, 해 뜨고 뜬 달은 죄다 낮달인 게지, 생각했다. 해는 늘 낮달만 만나고 그러니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p.43

권여선 작가님의 또다른 작품 [전갱이의 맛]은 이혼한 전남편이 성대 낭종 수술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말은 순수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됐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 p.62
김미월 작가님의 [연말 특집]은 대학시절 룸메이트였던 영미 언니가 부랑자가 되어 대학 동문들을 만나길 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과거 일을 회상하는 선의 이야기예요.
김희선 작가님의 [공의 기원]은 제물포 바닷가에서 영국인 수병으로부터 축구공을 하나 얻었던 소년이 그 축구공을 수리하다 축구공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의 증손자에 이르러 무인 공장을 열게된 역사에 대해 말합니다.
김봉곤 작가님의 [컬리지 포크]는 동성애자가 일본에서 생활하며 만난 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최옥정 작가님의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는 특이한 제목으로, 암 진단을 받은 조각가가 소설과 동명의 작품을 만드는 이야기예요. 실제 작가님께서 암 투병 중에도 이 글을 쓰시고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지금 그가 가질 수 있는 전부다. 그는 깊게 느낀다.
죽을 때까지 죽지 않는, 그가 마지막까지 가지고 갈 것은 이 감각이다. p.233
최은영 작가님의 [아치디에서]는 엄마와 살던 브라질 청년 랄도가 짝사랑하는 일레인을 찾아 왔다가 그녀에게 거절당한 후 아치디 마을의 사과 과수원에서 일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국여성 하민을 만나고 그녀를 통해 인생이 변하게 되지요.

팔 년 전 베개를 끌어안고 일레인을 그리워하던 사람을 나는 멀리서 바라본다.
곧 아일랜드로 떠날, 화산 폭발로 발이 묶여 아치디라는 마을로 향하게 될,
결국 그곳을 떠나 다시 돌아올 사람을.
넌 네 삶을 살 거야.
하민은 그에게 그렇게 말할 것이다. p.325
수상작들을 읽으면서 놀라운 문장들을 발견했습니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고 새로운 깨달음에 눈을 떴다고 할까,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수상작가분들은 다들 경력이 어느정도 쌓인 중견인 경우가 많아요. 작가 인터뷰, 왜 수상작이 되었나에 대한 작품론도 내용이 좋았어요.
젊은 작가들의 문장이 아무래도 쉽게 읽히는 편이라 속도감 있고, 경력이 많은 작가들은 문장을 더 꼼꼼히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구성이나 전개 방식도 개인차도 물론 있지만 세대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 어떤 형식이 있었습니다. 선물상자 속의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는 듯이 읽었어요.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