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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ㅣ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것은 곧 잠겨버릴 것이고 누가 무엇을 가리켰는지는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팀이 만든 의무기록은 남는다.
우리가 더 이상 이 일을 해나가지 못해도,
최근 3년 동안 시행했던 중증외상 환자들에 대한 선진국 수준의 치료는
의무기록으로 화석같이 명징하게 남을 것이다. p.9-10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돌고 활기가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왔다. p.17
[골든아워]는 중증외상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이국종 교수님의 저서입니다. 그가 겪은 의료 세계의 현실이 마치 드라마처럼 박진감있고 진지하게 담겨있어요.
외과의사가 된 이후로 그의 삶은 피폐해지는 걸로 보입니다. 중증외상환자를 살리기 위한 수술 자체보다 건강보험, 이송이나 지원 시스템 등 다른 외과적인 부분 이외의 일로 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나는 스스로 직장을 물러난다는 무의미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조직에서 나를 내치지 않는 한, 스스로를 깎아 먹고 갉아먹으며 버티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가장 좋은 것은 타의에 의해 잘려나가는 것뿐'이라고
수술방에 들어서며 나는 생각했다. P.71

삶의 막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세상은 막장이라고 했다.
생사의 긴 사투 끝에 죽어가던 사람이 돌아왔다. 실로 막장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병원의 막장뿐만 아니라 세상이 말하는 막장을 자주 마주쳤다. P.174-175
한 사람의 생존을 대한민국의 온 국민이 간절히 바라던 시기가 바로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부상당한 석 선장님의 수술 전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목숨을 걸고 해적들을 속여 선원들을 구하고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영웅인 석 선장님이 꼭 살아나길 저 또한 간절히 바랐습니다. 당시 선장님의 수술을 집도하신 이국종 교수님의 동요없이 무표정한 얼굴을 처음 본 순간 왠지 선장님을 살리실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생기더군요. 수술의 성공, 선장님의 회복까지 그 기적같은 과정 속에 이국종 교수님이 계셨고 중증외상 치료센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책 속에서 묘사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이 마치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환자의 숨이 붙어 있을 경우를 전제로 한 이야기였다.
해군 출신의 선장이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죽든 살든 그는 고국으로 와야 했다. P.219
이후에 중증외상 치료센터의 인력과 장비가 확충되어 우리나라도 안타깝게 외상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줄어들거라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이 책을 사실을 알게되니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국회의원들과 정부의 다른 예산 배정과 집행에 밀려 아직도 답보상태이고 이 교수님과 의료진들은 뜻하지 않은 오해까지 사고 있다니 기가 막혔어요.

누군가는 내게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이라서
더 힘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심각함이 지나쳤다.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이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주시했다.
등을 돌리는 순간 숨기고 있던 칼을 사정없이 내리꽂았다.
그 저열함에 나는 치를 떨었다. P.293

우리는 둘 다 소초장입니다. 공식적인 퇴각 명령이 있기 전까지 전멸할 때까지 소초를 지키는 겁니다. 이게 조직 안에서 중간관리자의 숙명입니다.P.354
이국종 교수님을 통해, 아직까지 의료진의 사명감과 희생으로 버티고 있는 중증외상 치료 시스템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길 바란다면 외상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의료 상황부터 해결되어야하지 않나 싶어요. 지지부진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들이 있었을지 가늠할 수 없네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여 법과 제도의 뒷받침이 있도록 노력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의 시간과 땀을 바치고 있을 중증외상 및 응급 의료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원문:http://blog.yes24.com/document/10750998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