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의 꽃 1
최정원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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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물결이 한순간 시야를 가득 메웠다. 

거대한 새의 날개처럼 크게 펄럭였다 천천히 가라앉는 옷자락.

장신의 남자였다. 그가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솔을 건너다보았다.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확실했다. 눈이 마주쳤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래, 이건... p.13



[묵호의 꽃]은 망령을 쫓는 무사, 일명 ‘저승사자’민훈과 새와 같은 동물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자 솔이의 이야기라고 소개되어 있어요. 캐릭터 소개와 짧은 책 속의 내용을 보니 속도감있고 코믹하게 벌어질 판타지 로맨스가 기대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이솔이 잔칫집의 일을 거들고 돌아오는 길에 저승사자를 만나는 걸로 시작됩니다. 솔은 화살에 맞을 뻔하지만 저승사자가 집까지 데려다줘 무사히 돌아와요.  

마을 제일의 장사라는 이태출의 외동딸 이솔은 스무 살에 복사꽃처럼 고운 얼굴(부친과는 전혀 닮지 않은)을 자랑하는 아이입니다. 이현 도련님과 가까이 남매처럼 지내더니 글도 읽고 쓸 줄 알죠.



이태출은 행복했다. 딱 두가지 문제만 빼면.

하나. 이 딸이 도통 시집을 갈 생각을 안 한다는 것.

둘. 이 딸이 가끔씩 영문 모를 헛소리를 한다는 것. P.40

솔이 다섯 살 되던 해에 마을에 온 세살 연상 이현은 동네 꼬맹이들과 어울려 놀던 사이였어요. 솔은 양친 없이 거구의 석도와 살림을 돌보는 미랑과 셋이 사는 현을 오라버니로 생각합니다. 비록 그가 사대부여서 그렇게 어울릴 사이가 아니지만요.  


약간은 지친 듯한, 낮지만 넓은 울림을 가진 그런 목소리.

이현의 잔잔하고 따뜻한, 듣는 이를 감싸주는 듯 부드러운 음성과는 전혀 다른...

날카롭진 않지만 메마르고 차가운, 공허한 목소리였다.

달 없는 밤 같네.

어이없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p.49


솔은 저승사자와 다시 만나게 되고 그는 이번에도 솔을 도와줍니다. 그의 진짜 정체는 병판의 아들 검은 호랑이라는 뜻의 묵호 서민훈입니다. 북방 오랑캐가 쳐들어 왔을 때 누이를 잃고 오른팔을 다쳐 겉으로는 기루를 드나드는 한량이 되었죠. 하지만 그는 은밀히 나라를 위협하는 자하원이라는 비밀 세력을 조사 중이에요.


처음엔 어디서 새하얀 목련이 내려앉았나 싶었다. 

옷보다 더 새하얀 얼굴은 자기처럼 곱고 맑아 한밤의 어둠도 감히 덮지 못할 듯했다.

p.62-63

민훈은 산 속에서 솔을 보고 반해요. 활달한 솔의 다른 모습을 본 그가 목련이라고 표현하는 게 멋집니다. 그는 솔이 이현과 가까운 모습을 보고 질투를 느껴요.



그 품에 기대어 눈을 깜박이던 그녀. 이름...이름을 불렀다. 

수천 번도 더 불러 본 듯 익숙하게. 서로가 서로를. 

그 사이에 끼어들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갑자기 덮치는 통증에 민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P.182



"이솔"

솔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 맺힌 그 두 눈을 민훈은 마주 들여다보았다. 깊이. 아주 깊이.

"너는 이제 손 떼라."

의식 저 멀리서, 마지막 한 마디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그래. 다시는 만나지 말자."  P.295 


기대한 대로 빠른 진행이고 현대적인 문체여서 페이지가 잘 넘어갑니다. 배경은 조선시대이지만 솔이 당돌해서 사대부인 현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해요. 저승사자인 민훈에게도 처음엔 겁을 먹지만 차츰 대범해지고요. 이래저래 아는 사람도 많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많은 외향적인 성격이에요. 천진하고 당당해서 귀엽네요. 민훈은 과묵하지만 솔을 좋아하는 마음을 비교적 일찍 깨닫게 되지요. 일편단심의 기운이 느껴져서 호감이 갑니다. 그와 정혼한 사이인 시호와는 어떻게 끝을 낼 지, 자하원과 솔의 관계, 이현의 정체 등 많은 의문들을 남기고 1권이 끝나요. 흥미진진한 전개가 바로 2권을 보고 싶게 만드네요.      


 * 이 리뷰는 출판사 자체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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