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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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슬픔은 주제도 비슷하고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요소들도 비슷했지만 피오나는 끊임없이 그 슬픔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절망적인 상황에 합리적인 시각을 제시해준다고 믿었다. 

고등법원 가사부 판사인 피오나. 어느날 남편 잭은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피오나는 거절합니다. 잭은 사랑을 갈구하고 그녀에게 찾을 수 없게되자 다른 상대를 만나지만 후회하며 돌아와요. 그녀는 그에게 실망하고 둘 사이는 더욱 서먹해져요. 

법정 사건들의 사연과 피오나의 사적인 장면이 번갈아 전개됩니다. 그녀의 감정변화, 생각들이 세밀하게 설명되고요.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애덤과 부모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수혈을 거부하는 문제로 논쟁하는 부분, 애덤의 진심을 듣기위해 그를 만난 피오나의 노력,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판결문의 내용은 액자형 소설과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언 매큐언의 작품은 많은 생각을 하게하여 읽은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네요.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머릿속이 복잡하고 잘 떠오르지 않는 듯한 기분입니다. 묘사가 많고 문장이 길고 복잡해서 상업적 소설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느끼게 해요. 어휘량이 상당히 많기도 해서 오래된 클래식한 문학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냅니다. 애덤이 예이츠 같은 시인의 시를 읽고 바이올린으로 클래식을 연주하는 게 어울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속의 인물들이 현재를 살고 있다는 걸 자꾸 잊어버리게 되네요. 이메일이나 핸드폰이 낯설어요.       


피오나는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외에는 다른 감정으로부터 멀어져 냉랭하게 살아왔었죠. 애덤이 그녀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도 보내지 않고 잊어버리며 살아가지요. 그러나 애덤이 갑자기 그녀의 집에 나타나고 우연한 계기로 인해 그녀의 평온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솔직히 이 이야기가 이렇게 끝이 날거라곤 예상을 못했어요. 클라이막스 부분부터 끝까지는 남은 페이지수를 생각지 않고 완전히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이전까지 고여있는 물처럼 잔잔하던 피오나가 격렬히 감정을 폭발하게 되는 순간, 그 감정에 이끌려가는 듯 했어요. 


이래서 이언 매큐언의 작품을 찾아 볼 수 밖에 없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체실 비치에서' 가 너무 짧아서 아쉬웠던 것처럼 이 작품은 현대 배경이어서 작가의 문체와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게 아쉽네요. 단점이 겨우 그 정도. 자신의 스타일이 확고하고 늘 평작 이상을 내는 작가의 노력과 능력이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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