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안 사회 - 제국과 식민지의 번안이 만든 근대의 제도, 일상, 문화
백욱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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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두 개의 서양이 공존한다. 



하나는 일본이 번안한 서양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이 번안한 서양이다. P.8


우리가 먹는 돈가스의 방식이 일본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건 알지만 아무 생각없이 좋아하던 음식이었어요. 그런데 식민지 잔재라는 지적을 보니 그런걸 이제야 깨닫게 되네요. 

외세에 치이며 살아온 우리나라에서 서구의 문물을 번안한 것이 많다니 [번안 사회]를 통해 어떤 것들인지 새롭게 알고 싶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 문물을 번안했고 한국은 식민지 시대와 1960년대에 일본에서 받아들인 걸 다시 번안했다고 합니다. 


1부 제국의 번안과 식민지

2부 번안 사회의 생활문화

3부 번안과 대중문화


1부 제국의 번안과 식민지에서는 일제 치하의 영향과 1960년대 번안도 일부 다루고 있어요.


한자와 영어를 포함한 서구어, 일어, 한글의 상호작용 속에서 진행된 근대어 번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거치면서 공고하게 뿌리내렸다. 일제의 정치적 지배는 말의 지배를 통해 완성되었다. p.33


말은 타자에 대한 직접적 행동이지만 글은 생각을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사유를 촉발하며 다른 행동의 계기를 제공한다. 

지금이야말로 서양어를 직접 자신의 말로 번역하지 못하고 일본이 만든 한자 기반 근대어를 그대로 갖다 쓴 득실을 꼼꼼하게 따져보면서 디지털 시대의 말글에 깃든 독과 약을 갈라내는 진지한 작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p.39


성경, 찬송가의 역사와 여러 언어가 뒤섞이고 그걸 번안한 과정에서 특성을 지니게 되었고 평양 교회의 대부흥운동을 거쳐 내세적이고 내면적이며 탈정치적인 한국 개신교의 바탕이 이뤄졌으나 신사참배에 굴복했으며 해방 후 반공과 친미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부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은사기념과학관을 통해 착취를 은폐로 둔갑시키고 과학기술의 혜택이 일제로 인한 거라는 인식을 주입한 것이라는 내용도 흥미로워요. 


독일의 라디오를 번안한 일본의 라디오 생산이 패전 후 전자 산업의 견인차가 되어 소니를 비롯한 회사들이 1960년대 세계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회사인 금성사가 일본 라디오를 모방하여 독일 부품을 조립해 만든 라디오로 정부의 국산품 애용 정책에 의해 성공을 거뒀다고 하네요. 우리나라가 현재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을 가진 건 시작과 비교하면 대단한 비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이 패망 후 포로를 감시하던 조선인 포로감시원 군속들이 전범으로 처형당했고 패망까지 일본군으로 동원된 조선인이 약 21만 명이나 되었다는 안타까운 내용도 있어요.


2부 번안 사회의 생활문화는 즐겨먹는 음식 돈가스의 소스와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로 잘린 것도 일본 방식이라는 소개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까지 일본은 육식이 금지되어 있었다는 믿기힘든 내용이 있네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의 체력을 향상시키려 식문화 개선을 도모하게 된거라고 합니다.





일본식 경양식이 "빵으로 할까요, 밥으로 할까요?"라는 주문과 명색이 양식집인데 단무지를 곁들인 것, 미국산 원조 밀가루가 들어와 국수, 수제비, 붕어빵이 생겨난 건 재미있는 사실이네요.

조미료, 양조간장, 유니폼, 고무신 등 생활용품에서 도로, 아파트 등의 건축물까지 다루고 있어요.   

 

3부 번안과 대중문화는 라디오 정치, 근대 미술의 다양한 변형, 만화, 유흥업 등을 다루고 에필로그로 마무리 합니다.  



이 책은 많은 자료를 토대로 하고 당시의 시, 노래 가사, 사진 등을 통해 번안의 흔적과 그것을 찾는 의미를 말합니다. 본문을 모두 컬러로 인쇄하여 훨씬 보기 좋아요. 




일제 번안물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방법은 그것을 직시하고 의도적으로 폐기하는 수준을 넘어 더 이상 그것이 필요 없는 근거와 터전을 만드는 길이다. P.13


프롤로그에 나왔던 이 말에 공감합니다. 한때 홍콩 영화와 일본 노래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죠. 하지만 우리나라 드라마, 영화와 가요 등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아시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어요. 국내에는 다른 아시아의 문화를 즐기는 소수의 덕후들이 있을 뿐이고요. 한복을 입는 사람이 줄었다고 생각했는데 한복입기를 억지로 강요할 필요없이 고궁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찍는 십대, 이십대를 흔하게 볼 수도 있어요. 젊은 세대가 태극기와 한글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도 높아 보입니다. 이렇게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높은 지적 수준이 더 나은 문화를 요구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향상된 문화로 순환이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한편으론 번안된 문화가 부정적이기만 한게 아니라 우리가 외부의 다양한 문화를 우리에게 맞게 수용하는 융통성과 여유를 가진 걸 수도 있으니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되네요. 다문화 사회로 변화중인 우리에게 한편으론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시각적으로 잘 배치된 내용과 자료들로 보기 편했고 새롭게 발견한 과거와 생각의 폭을 넓히는 내용이었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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